ADVERTISEMENT

[중앙일보에 바란다] '보도의 사회적 영향 고민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4월 회의가 27일 오후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렸다. 위원장인 신구식 (申坵植) 무역협회 차장의 사회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6명의 독자위원은 서울지하철노조 파업 등 이달의 주요 사건에 대한 본지의 보도내용 및 편집방향을 놓고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는 김영배 (金榮培) 사장실장.문병호 (文炳晧) 편집국장 대우.이수근 (李秀根) 논설위원.허남진 (許南振) 국제부장.김왕기 (金王基) 산업팀장.김일 (金日) 사회부 차장이 참석, 독자위원들의 비판과 제안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신구식 무역협회 차장 = 4월에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단독인터뷰와 만화로 다룬 유고사태 등 돋보이는 읽을 거리도 중앙일보에서 여러 건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쟁점이 될 만한 보도라면 역시 지하철파업인 것 같다.

지하철파업 기사를 읽으면서 중앙일보가 노조측 입장을 너무 소홀히 다루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위원들 의견은 어떤지 말해달라.

▶조정하 (曺정夏)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중앙일보는 누적된 노사갈등의 문제점을 깊이 파헤치지 못했다.

파업의 문제점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다 보니 정부와 지하철공사 입장만 전달하고 파업노동자들을 너무 이기적인 집단으로 묘사하지 않았나 싶다.

▶정승혜 (鄭承慧) 주부 = 같은 생각이다.

IMF경제위기로 겪는 노동자들의 어려움도 다뤘어야 한다.

균형있는 보도가 아쉬웠다.

▶오양호 (吳亮鎬) 변호사 = 문제는 지하철노조의 파업이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적 성격을 띤 것인데 신문에는 이번 파업의 불법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김창남 (金昌南)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 지금까지 노사간 대립이 있을 때마다 사측을 옹호해온 중앙일보의 성향이 이번 지하철파업 보도에서도 다시 드러난 셈이다.

특히 음성직 전문위원의 칼럼은 강경진압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줬다.

▶중앙일보 = 파업의 절차상 불법성은 초기에 보도됐다.

지면 제약으로 매일 보도할 수는 없었다.

또 노조의 주장을 좀 더 많이 반영하지 않은 것은 논리적으로나 사회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소수의견을 배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언론으로서는 더 큰 공동체인 시민 전체의 이익과 사회생산성 제고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 = 대한항공의 경영진 교체와 관련, 중앙일보 23일자에 실린 '대통령에게 드리는 고언 (苦言)' 이라는 제목의 김정수 전문위원 칼럼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권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제기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독자위원들은 중앙일보의 대한항공 관련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 = 김정수 위원 칼럼을 비롯해 중앙일보가 대한항공 문제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써서 보도했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시장경제 아래서 민간기업 경영권에 간섭해서는 안되는 게 원칙이지만 개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자세히 다루었다.

▶정 = 김정수 위원 칼럼을 읽고 속이 시원했다.

신문이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바른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 호감이 갔다.

▶김 = 내 견해는 다르다.

김정수 위원 칼럼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경제를 옹호했다기보다는 지하철파업 보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업을 두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가 사회보험 시리즈에서 사회보험의 민영화 필요성을 부각시킨 것도 어찌 보면 보험업계 이익을 대변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한국적 현실로는 사회보장에 관한 한 정부의 역할이 더욱 증대돼야 한다고 본다.

▶신 = 김정수 위원 칼럼에 대해서는 나도 이의를 제기하겠다.

기업경영을 주주와 시장경제원칙에 전적으로 맡기자는 주장은 적어도 지금의 한국적 현실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다.

▶중앙일보 = 기업오너들의 영향력이 과도한 현실에서 기업경영을 시장경제에 일임하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정서상 거부감을 일으킨다고 개인칼럼에서조차 소신껏 글을 쓰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문은 사회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보험 시리즈에서 민영화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사회보험제도의 효율성을 제고하자는 취지였다.

선진국들이 정부주도의 사회보험제도 때문에 겪은 시행착오를 우리가 구태여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신 = 도둑 김강룡사건과 관련, 언론이 피의자의 말에 놀아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 = 사건 초기에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피의자의 일방적 진술과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주장을 확인없이 보도한 것은 너무 경솔했다. 원칙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은 공익을 위한 목적이 아닌 한 보도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이정균 (李貞均) 일산 성신초등학교 교사 = 초등학생들의 눈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 언론이 너무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비춰진 것 같다.

학생들이 신문을 읽으면서 어른들이 왜 김강룡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흔들리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더욱 신중하게 진상을 파헤쳐 보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정 = 언론이 이같은 사건을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하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중앙일보 = 제작상 마감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과 타지와의 속보경쟁 등으로 김강룡사건 초기에 확인작업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독자위원들의 의견을 참고, 사실확인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다.

중앙일보의 보도나 편집에 대해 충고할 점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

▶조 = 영국 여왕의 방한을 마치 한국민의 축제처럼 너무 크게 취급한 것 같다.

여왕을 수행해 한국을 찾은 기업인이 50명이 된다는 점을 감안, 여왕 방한에 가려진 영국측의 경제적 속셈을 더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은 게 아쉬웠다.

▶정 = 중앙일보의 영국 여왕 방한 보도는 사진처리 등 전반적으로 다른 신문에 비해 돋보였다.

다만 생일상에 올라 화제가 됐던 떡꽃화분이 사진 없이 그림으로만 처리돼 궁금했다.

▶김 = 신문은 사실을 보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보도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 전.현직 대통령의 손자 3명이 함께 다니고 있다는 기사는 과연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김영삼 (YS) 전대통령의 발언과 행적을 크게 취급한 것도 문제다. 지역갈등구도가 존재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YS의 지역감정 자극성 발언을 크게 취급한 것은 바로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적 영향력 회복이라는 YS의 목적에 언론이 이용당한 것이 아닌가.

▶중앙일보 = YS발언 보도는 우리도 딜레마였다. 관련 보도가 사태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기사를 원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 여왕 방한을 너무 크게 취급했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모처럼 신선한 화젯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였고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신 = 중앙일보가 여전히 집권층의 눈치를 너무 살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월요인터뷰에 이희호 여사를 등장시킨 것이나 YS에 대해 다소 지나친 듯한 공격, 그리고 주간지에나 어울릴 법한 한화갑 인터뷰 등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중앙일보 = 집권층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측에서는 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신문을 만들면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토론도 많이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의도가 독자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앞으로 독자의 입장을 더욱 헤아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정리 = 장도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