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춘투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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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서울지하철 파업사태가 종료됨에 따라 향후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우선 이번에 '불법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한다' 는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풀어도 파업 주동자들에 대해서는 직권면직과 손해배상 청구 등을 동원, 책임을 무는 새로운 선례를 만들겠다는 자세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가 26일 노동관계 장관회의에서 "흔들림 없이 일관성 있게 나가라" 고 지시한 것은 이런 강경방침의 한 단면이다.

나아가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계획이다.

민주노총을 대표로 한 노동계와 정부의 대리전 양상을 보인 이번 사태를 통해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계의 저항을 잠재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인 대목은 국내 최대 단위 노조로서 서울지하철 노조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 한국통신 노조가 파업을 유보한 것이다.

한통의 파업 유보에 따라 지하철 노조의 파업으로 촉발된 파업사태는 최대 고비를 넘어 힘의 균형이 정부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금속연맹 등 일부 사업장이 파업에 참여한다 해도 노동계가 공언해 온 '5월 대란설' 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정부는 낙관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피 묻히지 않고 이긴 싸움" 이라고 정리했다.

태풍의 눈이었던 한통이 물러난 배경에는 지하철 노조원들에게 꺼낸 직권면직이라는 강공카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조차도 그 실효성에 반신반의했던 직권면직 카드는 노동계 내부의 동요를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카드에도 불구하고 노조원의 동요가 전혀 없다면 정부로서는 난감한 처지에 빠질 뻔 했다.

9천여명에 이르는 파업 농성자들을 전원 면직시키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파업 참여자가 이탈자보다 적게 된 마당에 당초 구조조정 대상인원에 맞먹는 1천~2천명 정도의 대량 해고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황은 아니다.

섣불리 강공 일변도로 밀고 나갈 경우 파업사태가 정치투쟁으로 변질,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량해고를 강행할 경우 벌어질 파장과 후유증도 감안해야 한다.

80년대 영국과 미국의 대량해고 사건이 노조를 무력화함으로써 노사분규는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총선 패배와 빈부격차 심화 등 부작용도 컸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정부로선 노동계가 26일 '백기' 를 듦에 따라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 을 줄 필요가 있게 됐다.

그러나 사태를 장악한 정부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 반면 노동계는 대화의 장으로의 복귀를 위한 명분을 기다리고 있어 접점 (接點) 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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