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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 '强 對 强' 대충돌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 정부 입장

정부가 노동계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정부는 23일 4부 장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서울지하철 파업 노조원의 직권면직 강행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같은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서울지하철 파업은 수천명 대량 해고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비화될 수도 있다.

26일 오전 4시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직장에 복귀하지 않는 노조원에 대해서는 '7일 이상 무단결근' 으로 처리, 숫자와 상관없이 해고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81년 항공관제사 파업 때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복귀명령에 불응한 노조원 1만2천명을 해고하고 재취업을 막고 있는 선례를 좇겠다는 초강경 자세다.

정부는 이를 통해 현재 20%대에 머물고 있는 복귀율을 크게 높여 파업이 스스로 와해되도록 하는 한편 '4, 5월 위기설' 도 조기에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이번 기회에 '불법은 필벌 (必罰)' 이라는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 '연례 행사' 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춘투 (春鬪) 의 소모전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생각이다.

정부 담화문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불법파업과 원칙없는 타협을 하지 않을 것" 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관행을 정착시키겠다" 고 말했다.

즉 '해고 뒤 복직' 이나 '구속 뒤 사면 복권' 이라는 적당히 타협해오던 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는 입장이다.

다소간의 충돌과 파업지도부의 구속사태를 겪더라도 단호한 법집행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이라고 정부는 판단한다.

이같은 배경에는 민주노총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한 정부는 결코 이들을 대화파트너로 인정치 않겠다는 의지

가 깔려 있다.

노동계의 압력에 굴복해 구조조정 자체를 포기할 경우 국정운영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날 조치로 파업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노동계가 계획하고 있는 24일의 전국 다발 집회에 이어 26일 한국통신노조 등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노정 (勞政) 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부가 너무 밀어붙여 파국을 맞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 조성준 (趙誠俊) 의원은 "정부가 민주노총을 굴복시키려고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 고 촉구했다.

고대훈.유광종 기자

◇ 노동계 입장

민주노총 (위원장 李甲用) 은 정부의 강경 자세만큼 단호하다.

현재 정황으로선 정면돌파밖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민주노총은 파업 해제 전제조건으로 정부와의 직접 교섭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23일에도 공공연맹을 통해 서울지하철 구조조정을 사실상 지휘한 기획예산위원회가 협상 대표로 나온다면 언제든지 파업을 풀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렇다고 정부측이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명분' 을 던지지도 않고 있다.

퇴로도 차단된 셈이다.

따라서 이번 총파업을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규정한 민주노총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등을 관철시킨다는 배수진을 쳤다.

민주노총은 23일 "정부가 우리 요구를 외면하고 '폭력적 탄압' 을 강행한다면 김대중 (金大中) 정권 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 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투쟁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파업을 지원하는 의미를 실어 24일 서울에서 노동자.실업자.농민 3주체가 각각 대규모 집회를 갖고 결속력을 시험한다.

대학생들과의 노학 (勞學) 연대도 펼쳐 전방위 공세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또 고군분투하고 있는 서울지하철의 파업대열에 매각 대상인 대우그룹 계열사를 가세시키는 한편 26일 한국통신 노조와 전국의료보험 노조를, 27일엔 전국대학노조를 각각 합류시킬 계획이다.

이어 5월 12일로 예정된 산하 최대 조직인 금속연맹 (조합원 18만명) 의 총파업을 앞당겨 27일부터 한국중공업.한진중공업 등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파업 시동을 걸 예정이다.

하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정도 세를 과시하면 정부가 한 발 물러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또 파업이 장기화하면 여론이 파업의 동기를 이해해 주고 지지를 보낼 것이란 판단도 어긋나고 있다.

오히려 22일에는 서울 당산역에서 사고까지 발생해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지하철을 제외하고는 공공연맹의 현장 파업 열기의 폭발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한 것도 부담이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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