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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영화제작자 '전쟁일기' 인터넷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세르비아인 영화제작자 AG (34)가 웹시네마 (www.webcinema.org)에 자신의 전쟁일기를 공개했다.

3월 23일부터 4월 16일까지 베오그라드에서 보고 겪은 일들이다.

나토의 공습을 증오하는 한편으로 세르비아인들의 광기 어린 모습도 역겨워하는 등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가 담겨 있다.

웹시네마측은 신변안전을 고려, 본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3월 23일 = TV, 세르비아 의회 코소보 외국군 주둔 반대.

▶3월 24일 = 모든 TV, 전쟁영화.애국가 방영. 불안하다. 오후 8시45분 첫 공습 사이렌.

▶3월 25일 = 갑작스런 폭음. 미사일이 떨어졌다. CNN.BBC 청취.

▶3월 29일 = 담배가 떨어졌다. 친구가 군 소집명령을 받았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소식뿐이다. 말잔치다.

▶3월 31일 = 미 대사관이 습격당하고 서방과 관련된 건물은 모조리 약탈당하고 있다.

▶4월 3일 = 토요일. 근처의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 여자친구 A와 대화를 나눴다. 그녀에게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의 절망적인 작별인사는 수시간 동안의 가득한 슬픔과 우울, 종말론적인 섹스로 변했다. 밤에 오랜 갈등끝에 이사키로 한 친구 M의 집으로 갔다. M은 "부활절이라 공습은 없을 것" 이라고 했다. 바로 그 순간 강한 폭발음이 창문을 뒤흔들었다.

나토의 공습은 표적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4월 9일 = TV뉴스를 보며 웃었다. '제정신이 아닌 폭탄' '악마적 나토의 전략' '소위 유엔이란 곳의 소위 사무총장' 등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4월 11일 = 옆에서 짐 꾸리는 것을 도와주던 B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아빠나 삼촌은 아니지만 이 아이는 나의 큰 기쁨이었다.

아이는 나를 '믐바' 라 부르며 따랐다.

'믐바' 는 이제 그를 떠나 배신한다.

뭐 이런 개같은 인생이 다 있을까. B와 나는 슬픔에 못이겨 한동한 같이 울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4월 13일 = 베오그라드의 거의 모든 사람이 몸에 붙이고 다니는 표적마크에 많은 사람이 깊은 동정심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아니다.

우리는 이 마크가 역겨울 뿐이다.

나는 공습 표적이 되기 싫다.

이 마크를 붙이고 있으면 '나는 애국자요, 좋은 세르비아인이며 국가를 사랑한다는' 확인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종류의 통합도 거부한다.

▶4월 15일 = 아름다운 날이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미니 스커트를 입은 아름다운 다리의 미녀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표적마크를 붙이고 있다.

우스운 일이다.

정리 =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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