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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지하철 갈수록 '공포특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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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하철 파업으로 인한 대형사고 우려가 현실화될 뻔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22일 오후 당산역에서 차막이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2226호 전동차에 타고 있던 3백50여명의 승객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위기감에 몸을 떨었다.

이날 사고는 노조파업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무리하게 운행되고 있는 서울 지하철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차막이를 들이받고 전동차가 멈춰선 것은 당산철교 밑을 지나가는 88올림픽대로를 불과 5m 정도 남겨놓은 지점. 차막이는 1㎜짜리 강판 두장을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시 시속 10㎞로 돌진하던 전동차의 속도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칸막이를 뚫고 철로를 벗어나 10m 아래 올림픽대로에 추락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지선 뒤로 30㎝ 두께의 자갈이 깔려 있었으나 질주하는 전동차를 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열차에 타고 있다 부상한 具정희 (77.여.충남부여군임천면) 씨는 "역사에 다 도착했는데도 열차가 계속 진행해 이상하게 생각하던중 갑자기 '끽' 하는 소리가 나면서 급정차해 바닥에 넘어졌다" 고 말했다.

지하철공사 측은 "구내에 진입할 때 자동제어장치 (ATS)에 의해 1차 감속한 뒤 2차로 기관사가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하는데 부주의로 2차 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공사 측은 사고후 ATS를 점검해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당산역에 설치된 ATS는 진행.주의.경계.정지 네 가지 기능중 정지기능으로 고정돼 있어 역에 들어가는 순간 무조건 1차 정차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사고 기관사 許승길 (54) 씨는 68년 철도청에 입사해 기관사로 일했으며 94년부터 일선 기관업무를 떠나 군자차량기지에서 구내 입환업무를 담당하다 이번 파업으로 비상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許씨는 경찰 조사에서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자 정신이 혼미하던중 역구내에 도착하면서 다소 긴장을 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전동차가 정지선을 지나치고 있었다" 고 진술했다.

공사의 한 관계자는 "許씨가 파업 이후 비상근무에 들어가면서 평소 세시간씩 밖에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며 "현재 비상 근무중인 모든 기관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 또 이같은 사고가 발생할지 우려된다" 고 말했다.

한편 공사 측은 전동차 내부의 정비불량으로 보조브레이크 장치가 고장난 것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사고차량을 회송하는대로 정밀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김정하.김선하.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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