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성호의 세상보기] 앱설루트 머니(Absolute Money)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 워싱턴DC에 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석 전문 절도범이다.

어느 날 한 재력가의 집을 털다가 그 집의 젊은 여주인과 미국 대통령 진 헤크먼의 정사 (情事) 를 목격한다.

취중 남녀의 농탕 (弄蕩) 이 싸움으로 번지자 백악관 경호원이 뛰어들어와 여자를 사살하고 대통령의 목숨을 구한다.

밀실에서 이 광경을 낱낱이 지켜본 도둑은 이후 백악관 비밀경호팀의 살해 추적을 받는다.

백악관은 단순강도의 짓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하나 도둑은 끝내 진실을 흘린다.

'앱설루트 파워 (Absolute Power:절대권력)' 의 음모는 좌절된다.

이 지능적인 도둑은 그러나 권력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것 이상으로 돈과 보석을 숨긴 장소를 찾아내는 데서 짜릿한 즐거움을 맛본다.

워싱턴 재력가의 집에서도 한쪽 벽면이 거울인 밀실을 발견하는데 거기엔 귀중품을 숨겨둔 벽장이 있다.

첫째 서랍을 여니까 온갖 희귀 동전과 기념 주화가 빼곡이 정돈돼 있다.

둘째 서랍에는 금 은 백금 손목시계가, 셋째 넷째 서랍에는 겹줄 겹겹줄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휘황찬란하다.

다섯째 서랍에는 빳빳한 1백달러 백장 뭉치 - 그러니까 1만달러 뭉치가 가득 찼다.

워싱턴 범행 이후 은신에 들어갔던 그는 다음 범행장소로 한국을 택했다.

손이 또 근질거리기도 했지만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다시 돈이 철철 넘쳐흐르기 시작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소식을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잠입한 그는 고위 공직자, 주로 여권 인사의 집을 범행대상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딱 네가지.

①고위 공직자는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속에서도 오히려 재산을 늘렸다. ②여권 인사 집에는 특히 돈이 많을 것이다.

한국의 염량세태 (炎凉世態)에 따르면 정치자금은 권력을 가진 쪽으로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③고위 공직자들은 도둑을 맞아도 신고를 기피하고 피해를 부인.축소한다.

④한국의 검.경도 덩달아 부잣집 도둑 피해는 대부분 숨긴다.

도둑으로선 이런 천국이 또 없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미 대도 (大盜) 조세형이 있고, 특히 최근에는 김강룡 (金江龍) 이라는 신진이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범행 현장에서 만약 이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러나 다행히 조세형은 이미 새 길을 걸은지 오래고 김강룡은 마약을 자주 한다는 사실을 알곤 안심했다.

이스트우드는 먼저 실세 도지사의 집에 잠입했다.

우유 투입구로 거울이 달린 작대기를 넣어 문고리를 돌리면 현관문은 쉽게 따진다.

워싱턴DC에서처럼 노트북 컴퓨터를 동원, 암호를 해독한 다음 경보장치를 해제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장롱 서랍, 화장대.부억 서랍을 열 때마다 1백만원 다발이 툭툭 떨어졌다.

놀랄 것 없어, 다 그런거지 뭘. 그때 그 시절 장학로 (張學魯) 실장의 집에서는 실내 휴지통에도 돈 뭉치를 던져 두지 않았는가.

모두 3천5백만원을 훔치고, 옆의 007가방을 열어 보니 흐익! 1백달러 백장 묶음 12뭉치가 날좀 보소 한다.

이어 경찰서장 집을 털었다.

아니, 웬 돈이 꽃병 속에도? 김치냉장고를 여니 1백만원씩 담은 봉투 58개가 꽉 찼다.

왜 하필 김치냉장고에? 옳거니, 검은 돈은 썩기 쉬우니 상하지 말라는 한국인의 지혜로고!

내친 김에 장관 집과 기업인 집을 연달아 털었다.

고가의 미술품을 챙겼고 장롱 밑 지하 밀실에 은닉된 금괴 12㎏도 훔쳤다.

씨가 마른 줄 알았던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찾아냈다.

이스트우드는 한국 고관대작의 재산상태는 자진신고로 밝혀 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잠적했다.

진상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이스트우드씨, 이번 '앱설루트 머니' 에서도 제작.감독.주연을 겸할 거요? 그렇다면 먼저 김강룡을 만나 보는 게 좋을 거요. "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