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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듯 뚱한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거장의 내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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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09면

1 엔제리너스 커피전문점 간판.

집에서 오래된 책을 정리하다가 동화책 표지에 붙어 있는 그림 스티커를 발견했다. 어렸을 때 아끼던 스티커인데, 조그만 날개를 단 통통한 아기천사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그림이다. 그 다음 날 사무실 빌딩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들렀다가 늘 보던 간판(사진1)을 보는 순간 미처 못 했던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저 천사는 그 턱을 괴고 있는 천사와 함께 라파엘로 그림에 나오잖아!”

문소영 기자의 대중문화 속 명화 코드 : 라파엘로의 아기 천사들

이 두 꼬마 천사는 원래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사진2)’ 그림 하단에 나오는데, 이 작품은 독특한 시각효과를 창출하는 구성으로 이름이 높다. 그림 양쪽에는 녹색 커튼이 그려져 있고, 그 커튼과 성모자의 뒤로, 수많은 아기 천사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신비로운 하얀 공간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청아한 소녀 같은 마리아가 옷자락을 나부끼며 구름 위에서 막 한 발을 내디딜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지상 세계에서 열린 커튼 너머로 영묘한 천상 세계를 보는 것 같은, 그리고 천상의 성모자가 화폭을 통해 막 지상으로 내려와 자비의 손길을 뻗을 것 같은 감동적인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2 ‘시스틴 마돈나’(1512~1514), 라파엘로(1483~1520) 작, 캔버스에 유채, 265×196㎝, 옛 거장 미술관, 독일 드레스덴

이 경건한 장면에 명랑한 변주를 가하는 것이 그림 하단의 두 아기 천사다. 왼쪽 녀석은 자못 진지하게 턱을 괴고 있지만, 오른쪽 녀석은 꼬마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 으레 하는 그 자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녀석은 화면에서는 안 보이는 발을 이미 동당거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자세나 아기 천사들의 약간 뚱한 표정이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워 더욱더 사랑스럽다.

이렇게 그림에 발랄함과 부드러움을 더해 주는 날개 달린 꼬마들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회화에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 꼬마를 가리켜 하나일 때는 푸토(Putto)라 하고 여럿일 때는 푸티(Putti)라 한다. 푸티는 ‘시스틴 마돈나’ 같은 그리스도교 성화에서는 천사로서, 그리고 ‘갈라테이아의 승리(사진3)’ 같은 그리스 신화 그림에서는 활을 든 큐피드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시스틴의 마돈나’의 두 꼬마 천사처럼 인기를 끈 푸티는 없었다. 이 천사들은 현대에도 커피전문점 간판뿐만 아니라 접시에, 우산에, 수첩 표지 등에 끊임없이 초대되고 있다.

3 ‘갈라테이아의 승리’(1512~1514), 라파엘로(1483~1520) 작, 프레스코, 295-225㎝, 빌라 파르네지나 벽화, 로마 4‘비너스 탄생’(1879), 빌리앙-아돌프 부그로(1825~1905) 작, 캔버스에 유채, 300-218㎝, 오르세 박물관, 파리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 꼬마 천사들의 그림에 익숙하고, 또 미술 교과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하나로 나오는 라파엘로의 이름에도 익숙하지만, 정작 라파엘로가 이 천사들을 그렸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3대 거장 중 나머지 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나리자’ 패러디 광고나 ‘피에타’를 인용한 현대미술 작품 등을 보면 단번에 그들의 작품인지 알아보는데 말이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다빈치의 작품은 심오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에,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박력 넘치는 영웅적인 분위기 때문에 일상과 잘 섞이지 않고 튀는 반면, 한결 온화하고 그냥 보기에도 ‘예쁜’ 라파엘로의 그림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라파엘로는 나머지 두 거장에 비해 위대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의 그림은 너무 쉽고 피상적인 아름다움만 가진 것이 아닐까?

이쯤에서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우리는 일반적인 호소력을 지닌 그림들이 반드시 어딘가 알기 쉬운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 그러나 외견상의 단순함은 깊은 생각과 세심한 계획, 엄청난 예술적인 지혜의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다.”

이것이 라파엘로의 작품세계를 요약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파엘로의 ‘갈라테이아의 승리(사진3)’의 경우 언뜻 보기에는 그저 발랄하고 단순 명쾌한 그림이지만, 잘 보면 절묘하게 변형된 대칭으로 균형 잡혀 있고 자연스럽게 리드미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고래가 끄는 수레를 타고 파도를 스치며 달려가는 바다의 님프 갈라테이아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의 노래를 흘려들으며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의 가슴을 향해 활을 겨누는 큐피드 셋은 그녀의 머리 위로 아치를 만들면서 화면 아래에 헤엄치는 큐피드와 대구를 이룬다. 또 소라나팔을 부는 바다의 신 둘도 대구를 이루고, 두 쌍의 남녀 신도 대구를 이루지만, 어색한 완전 대칭이 아닌 변형된 대칭이라 그 대구가 눈에 띄지 않으면서 그림에 생동감 있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그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화가들에게 대선배 라파엘로는 교과서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 ‘갈라테이아의 승리’는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흠모하며 너도 나도 오마주하는 작품이었다. 이런 오마주 중의 하나가 19세기 프랑스의 아카데미 화가 빌리앙-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 탄생(사진4)’일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청출어람이 되기는커녕 왜 라파엘로가 거장인지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부그로의 그림을 보면 인물의 피부가 지나치게 하얗고 매끄러워 마치 밀랍인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가비 위 비너스의 자세는 너무 작위적이고, 심지어 돌고래를 만지는 아기 큐피드 역시 다분히 꾸민 듯한 몸짓이어서 속된 말로 ‘닭살이 돋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에 비해 라파엘로의 그림 속 인물들은, 특히 현대까지 인기를 독차지하는 꼬마 천사들은 안색과 몸짓과 표정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가. 그리고 그것은 섬세한 관찰과 탁월한 감각, 숙련된 기술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산뜻하고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은 라파엘로를 3대 거장의 반열에 기꺼이 올려놓도록 만드는 것이다.


중앙데일리 경제산업팀 기자. 일상 속에서 명화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며,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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