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독서고수] 책에 대한 찬가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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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50쪽)

한비야님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다가 이 책을 만났다. 마침 도서관에 간 김에 덩달아 대출신청을 했는데 인기가 없는지 금방 서고에서 꺼내주었다. 이 책은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뉴욕의 가난한 여류 작가와 런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있는 중고서점 직원들간에 주고 받은 편지로 이루어져있다. 그녀가 중고서적을 주문하기 위해 서점으로 주문서를 넣으면, 서점 직원들은 책을 찾아 뉴욕으로 보내주는 그런 편지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고객과 서점직원의 관계로 시작되었지만, 이 편지를 통해 그들의 우정은 점점 깊어진다. 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또 제2차 세계대전의 뒤끝이라 생필품 배급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자 그녀가 서점 식구들을 위해 햄이나 계란 같은 것들을 선물로 보내준다. 또 서점 식구들은 답례로 손수 만든 식탁보를 보내주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이들의 편지는 20년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헬렌 한프는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유명해지고,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의 내용은 우선 경쾌하고, 감동적이면서, 잔잔한 유머가 있다. 가난한 작가는 어렵게 구한 중고서적을 맛깔나게 읽고, 친구들은 멀리서 보낸 햄 하나를 즐겁게 나눠먹거나 요즘엔 쳐다 보지도 않는 나이론 양말 하나로 온가족이 들뜰 수 있는 그런 것. 부족함보다 과함이 많은 요즘인지라,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쟁 후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부러움이 몰려왔다. 더불어 책의 소중함에 새삼 눈 뜨면서 주말에 책장 정리부터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은경(회사원·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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