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토크쇼]이광모-로랑스 파랑 '할리우드 넘어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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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프랑스의 라즈넥 프로덕션의 신예 프로듀서 로랑스 파랑 (27.여) 과 영화 '아름다운 시절' 로 최근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한 이광모 감독 (38) .두 사람이 '할리우드 넘어서기' 를 주제로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독점을 우려하는 의견을 나눴다.

라즈넥 프로덕션은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 , 트란 안 훙 감독의 '시클로' 등을 만든 제작사. 로랑스씨는 16일까지 열리는 프랑스 걸작 단편 필름페스티발에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로랑스 파랑 = 축하합니다. 대종상에서 작품상을 받으셨죠. 프랑스에서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응하는 영화만들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비할리우드적인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관객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관객이 이들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광모 = '다양성' 에 대한 지적에 저도 공감합니다. 예술영화냐 상업영화냐 하는 이분법적인 논쟁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된다' 는 생각은 철저하게 할리우드적인 생각이죠. 우리 문화가 한쪽으로만 치우쳐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나머지를 채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랑스 = 프랑스의 영화보호 정책의 출발점은 영화를 '상품' 이 아닌 '문화' 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유니프랑스라는 단체가 해외에 프랑스영화를 알리는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고 영화 관람료의 11%의 세금을 영화발전 기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해도 결국엔 프랑스 영화를 지원하는 셈이 되죠. 할리우드영화에 대항하자는 데에는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모든 제작자와 감독이 단결을 하는 상황입니다.

이광모 = 한국에서도 영화 관람료에서 세금을 거두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다른 점은 이 돈을 영화만이 아닌 다른 문화분야를 지원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랑스 = 프랑스에선 이 기금 외에도 직접적인 지원책으론 CNC에서 영화제작을 지원하고 지방마다 지방위원회가 있어요. 다행히도 '아르떼' 라는 예술.다큐 채널이 있어서 예술영화제작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광모 = 일부에선 프랑스의 잘 갖춰진 지원책이 프랑스 영화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로랑스 = 할리우드 영화와 프랑스 영화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할리우드는 국제 시장을 겨냥하기 때문에 시나리오는 단순하고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반면 프랑스는 영화의 문화적 측면을 중시하죠. 영화가 향수나 자동차처럼 단순히 '돈버는 수단'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화는 내적.우주적.예술적 표현 수단이기도 해요.

이광모 = 사실 영화를 산업적으로 바라보느냐 문화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엔 큰 차이가 날 수 있죠. 그런데 한국에선 산업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화적 접근에 걸림돌이 너무 많아요. 전통예술의 경우 산업적으로 봤을 땐 그 생존이 어렵지만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한국에선 상업성만을 강조하다보니 철저하게 할리우드보다 더 할리우드적인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로랑스 =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수단입니다. 한국 정부에선 영화의 중요성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 궁금하군요. 저에겐 차이밍 량 감독의 '애정만세' '하류' , 왕자웨이 감독의 '해피투게더' 같은 영화들이 대만.홍콩 문화에 관심을 갖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광모 = 우리를 되돌아봐야 겠군요. 저는 해외 영화관계자들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을 만든 배용균 감독 얘기를 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영화가 문화적 정체성을 잘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일겁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정부의 인식에 대해서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영화를 자동차의 매출 수익등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자본의 논리로만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젊은 작가군을 죽이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로랑스 =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우리는 미국영화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또 따라가서도 안되고요. 전세계인들이 코카콜라를 마시지만 코냑이나 소주를 전세계인들이 마시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더욱 자신만의 색깔을 지녀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편일률적인 문화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이광모 = 영화가 자본의 영향을 받는 산업적 범주안에 있는 문화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영화정책 등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산업 양 측면에서 어떻게 균형맞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로랑스 = 지나친 변방영화는 관객과 만나는데 문제가 있죠.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예술적 영화를 존재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는 프로듀서로서 난관이 적지 않죠. 다행이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영화 '증오' 의 성공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개봉 전엔 흑백에다 실험성이 강한 이 영화가 흥행에서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세계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죠. 정부 지원을 받는 아르떼 에세 같은 극장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광모 = 그런 극장이 존재하는 것은 제작에 큰 도움이 되죠. 한국에선 할리우드 영화들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그나마 서울에 단 두개 있는 예술영화상영관에서조차 직배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스크린쿼터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프랑스 상황은 어떻습니까.

로랑스 = 프랑스는 영화관 의무상영은 없지만 정부지원을 받는 '아르떼 에세' 에는 의무상영제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TV 영화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간접적인 지원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고금지를 풀어달라고 미국에서 끊임없이 요구해오고 있지만요.

이광모 = 저는 문화가 하나의 생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할리우드 영화가 황소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문화는 또 달라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이 더 심각하죠.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균형을 추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랑스씨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입니까.

로랑스 = 감독의 개성과 색깔이 잘 드러난 영화들이죠. 저는 감독이 갖고 있는 작가로서의 권리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제작자가 좌지우지하지만 감독은 자신이 미학을 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죠. 다음 칸 영화제에서 이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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