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89.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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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제8장 도둑

남원의 5일장은 광한루 옆인 금동 순창사거리 주변이지만, 상설시장과 뒤섞여 섰다. 그러나 규모는 광양과 구례장을 능가하였다. 순창이나 곡성으로 가는 대로이기도 한 사거리 주변의 난전에는 아침나절부터 장꾼들로 붐볐다.

남원장에서도 뜨내기였던 그들은 내왕이 뜸한 길 건너 보도에 좌판을 펴기로 하였다. 보도 주변에는 안사가도 좋으니 만져만 봐달라고 애걸하는 옷장수들이 띄엄띄엄 진을 치고 있었다.

비린내 나는 건어물 장수가 난데없이 뛰어들어 좌판을 펴자 뜨악한 기색들이 역력했으나, 초장부터 시퍼런 식칼을 들고 맛보면 기절한다며 설치는 승희의 기세에 기가 질렸는지 시비를 걸지는 못했다.

그들 먼저 비린내를 피해 멀찌감치 좌판을 옮기는 축도 있었다. 이젠 승희조차 난전자리를 잡는 요령까지 터득한 셈이었다.

뜨내기가 자리를 잡는 요령은 첫째는 배짱이었고, 둘째는 성정이 미욱한 위인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염치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자리다툼에 이골난 잡살뱅이들의 야살스런 삿대질이나 볼멘소리에는 눈길을 돌리기는커녕 코대답도 않고 참는 것이었다.손수레를 난전 곁으로 아슬아슬하게 밀고 가다가 틈만 있다 싶으면 잽싸게 자리를 잡고 목청 돋워서,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는 날입니다.

맛보면 기절하는 생선왔다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왼편에 있는 옷장수, 오른편에 있는 가방장수에게 양해 빌고 인사치레하다 보면, 갈 길 바쁜 장꾼들 모두 놓치고, 어느덧 참새떼들 내려앉는 파장 무렵에 겨우 자리라고 잡아 보았자 잇속은 온데간데 없고, 시색 좋았던 난전꾼 허울만 초라하게 남을 뿐이었다.

게다가 겉보기에는 때깔 고운 승희가 식칼까지 꼬나들고 설치기 시작하면, 얼떨결에 빼앗긴 자리라 하더라도 감히 대척할 엄두를 않았다.

옷장수들이란 대개는 장터로 나온 지 일천한 새내기들이 많았다. 그들은 장거리로 나오기 전에 애당초 기가 죽어 있었고, 회의와 위축으로 이미 한풀 꺾인 축들이었다.

그들은 승희의 가파른 눈길을 마주치려 할 배포가 없었다. 그러나 간혹 쏘아붙이며 대적하려는 위인이 있으면 철규는 승희에게 넌지시 다가가 귓속말로 식칼을 보다 위협적으로 흔들어 보라는 주문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자리 잡는 일에 대해선 진작부터 태호나 승희에게 맡겨두기로 한 것이었다.

장꾼들의 흐름도 저수지에 회유하는 붕어들처럼 독특한 흐름이 있었다. 물반 고기반이라 할지라도 입질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먼지만 뒤집어 쓰며 파리만 날리던 좌판에도 어느 한 때는 장꾼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입질을 해대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었다.

물리가 트인 노점상들 사이에는 그 단초를 주술적인 징조를 가지고 점치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초경 (初經) 의 숫처녀가 마수걸이를 해주거나 안경 낀 사람이 마수걸이를 해주는 경우에 그 날의 잇속을 판가름하려 드는 따위였다.

여자가 식칼을 들고 설치는 것도 그날의 운세에서 좋은 징조로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원장에서도 두 사람의 존재는 유별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매상은 광양장에 비하면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잇속을 겨냥하지 않는데도 까닭없이 매상고의 경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일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

박철규가 좌판을 옮겨 볼 심산으로 장마당 구경을 나섰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장터 초입에서부터 네거리 끝까지, 그리고 장옥들이 늘어선 상설시장 속속들이 기웃거리며 떡 벌어진 간고등어 좌판이 있는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그들만치 구색을 갖춘 간고등어 좌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만난 상인이 있었다. 태호가 말했던 바로 그 고흥의 고막장수였다. 식솔들을 거느린 모양새하며 위인의 걸걸한 성품이며 여자만 갯벌에서 캔 고막을 풍로에 구워가며 팔고 있는 것도 태호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그 역시 광양장에서부터 남원장까지 섬진강 길을 따라 열리는 장삿길에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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