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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쇼] 성기완,김윤아의 '록음악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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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가요계 멀티플레이어 성기완 (가요평론가인 그는 VJ에서 록가수까지 왔다갔다 한다). 인기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 (그녀는 지난달까지 FM DJ였으나 대중을 의식않는 자유로운 진행탓에 '경질' 됐다). 주제는 '록 음악 하기'. 불청객 고구마 (요즘엔 록밴드 원더버드 멤버인 그는 성기완에게 숙취회복제 1병을 상납하고 토크쇼 '방청권' 을 얻어냈다) .

◇ 성 = 윤아, 요샌 무슨 음악 듣니?

◇ 김 = 조PD 음악 좋더라. 진짜 속이 다 시원해져.

◇ 성 = 그러니까 18세 미만 판금조치도 당하고 그러지.

◇ 김 = 팔 건 다 팔지 않았어요? 15만장!

◇ 성 = 정치적 저항이든 여성의 권리든, 노숙자들에 관한 것이든 노래로 할 얘길 한다. 그게 난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해. 그런 메시지를 전해서 사람들에게 반성의식을 주는 반면 한편으론 그것 (메시지) 을 팝화시켜서 그 진실의 무게를 희석시키지.

◇ 김 = 전 그것을 세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시류에 영합해 메시지를 팔아먹는 상품화. 둘째는 우리는 정신이 있는 밴드라고 잘난 척 하는 대외선전용. 셋째는 진짜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 그런데 저는 하고 싶지 않은 얘긴 안해요. 몇가지 안되는 제 장점중 하나죠.

◇ 성 = 그 메시지들이 정치적 무기가 되던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다르잖아. 저항적 태도에 프리미엄도 없어졌고.

◇ 김 = 저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제가 발언하는 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 성 = H.O.T 노래를 들어보니 어떤 것은 가사가 무시무시하게 비판적이고 과격하더라고. 메시지는 진지한데 노래로 불려지면 그냥 양념이 되버리는 시대에서 가수가 정말 비판적 발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게 고민이 되더라구. 오히려 이젠 서정적인 표현속에서 진짜 발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 김 = 그건 대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나 그렇게 하는 거죠.

◇ 성 = 옐로우 키친이라는 록밴드가 그래. 얘들이 뭔가를 알고있는게, 노래를 들어보면 직접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데도 울림이 온다는 거지. 우리 음악의 서사 방식이 변해야할 때 아닌가는 생각이 들어.

◇ 김 = 제가 오늘 일부러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왔어요. 록 하는 사람이라면 청바지에 면티만 입어야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비슷한 얘기만 해야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여성들을 위한 가사를 쓸때 여성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지 우회적으로 발언하면 못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최근에 블랙홀 공연을 봤는데 눈물이 날 뻔 했어요.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진지한 태도로 임하더라구요.

◇ 성 = 진지한데 배고프지. 록을 얘기할 때는 굉장히 부풀려져 있는 반면 실제 로커들은 고생하는게 문제지.

◇ 김 = 록이든 뭐든 한국 음악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가정에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해요. 음악적 재능이 있는데도 부모의 뜻에 따라 의사나 변호사 이런 쪽으로 빠져야 하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 고구마 = (졸다가 괘종소리에 일어나) 어, 1시네. 약속이 있었는데 깜박했네. 나 잠깐 나갔다올께.

◇ 성 = 안와도 돼. (웃음) 윤아,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니?

◇ 김 = 나사 풀리고 망가진 스타일의 가수들이 좋아요. 더 더, 스웨이드, 라디오헤드 같은 영국밴드들.

◇ 성 = 난 옛날 과지. 비틀스부터 머디 워터스, 크림, 뭐 이런 블루스 계열 명장들이 좋아.

◇ 김 = 어 난 비틀스 싫은데

◇ 성 = 비틀스 싫어하는 록가수도 있나?

◇ 김 = 음악이 꿀꿀하고 유치해요. 사춘기 소년 감수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성 = 신선한 얘기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세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우리 환경에서 록이나 록으로 상징되는 진지한 음악, 음악다운 음악은 참 성공하기 어려운 것 같아. 록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김 = 글쎄요. 어렵네요. 가수와 청중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성향' 이 중요한 것 같아요.

◇ 성 = 록은 사실 비어있는 개념이고 계속 주위의 장르들이 들어오는 음악이 아닌가 생각해. 그게 제일 중요하지.

◇ 김 = 록이 주류라고 해도 문제예요. 그러면 역시 껍데기 뿐인 음악이 대거 쏟아질 거고. 문제는 음악의 다양성이죠. 우리 공연에 오는 팬들을 보면 무슨 록 스피릿이다 저항이다 이런 것 생각하고오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냥 취하고 싶은 사람들, 몰입하고 싶은 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 밴드 성향과 비슷한 사람들이 와서 즐기고 간다는 거죠.

◇ 성 = 대중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발성인 것 같아. 음악하는 사람은 하고싶은 걸 맘껏 하고, 언론은 그 뜻이 다치지 않게 노력하고, 또 듣는 대중은 방송만 의존하지 않고 클럽을 찾든지 음반을 직접 사는…. 그런 자발성들이 존재하는 한 록의 미래를 걱정하지는 않아.

◇ 김 = 하지만 자발적인 선곡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주는 것 같아요. ◇ 성 = 너무 TV에 매달려 제대로된 노래를 고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느는 게 사실이야. 결국 교육제도가 중요한데 영국의 경우 테크노에 인도음악을 섞은 개성파 밴드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은' 은 아시아인에게 문화적 교육을 시켜주는 사회복지 프로젝트 덕분에 만들어졌지. 또 아르헨티나의 유명 피아니스트는 빈민촌을 찾아가 음악교육을 했고 그래서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길러졌지.

◇ 김 = 교육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만 우리 음악현실을 개선하려면 '위에서 확 바꾸는' 혁명적 변환이 필요해요. 방송사에서 가수들 복장규제를 철폐하고 라이브 프로 확실히 만들어주고, 성인음악 전용프로도 신설해주고 뭐 이래야 좀 가시적 변화가 있지 않을까.

◇ 성 = 최근 화제가 된 산울림 트리뷰트 음반을 얘기하는 것으로 자리를 파하기로 하지. 그 음반으로 '한국록 30년' 이란 화두가 자주 거론되고있는데….

◇ 김 = 한국록 30년, 이런 것은 사람들이 워낙 종합선물세트를 좋아해서 나온 얘기같아요. 저는 한국록, 뭐 이런 거창한 개념은 갖고있지 않았어요. 다만 최근 나오는 음반들을 보면 록을 비롯한 우리 음악이 확실히 잘 크고 있구나 이런 확신은 들어요. 특히 기완 오빠가 '라면을 끓이며' 를 부른 '원데이 투어즈' 같은 음반은 국내 음반중 최고인 것 같아요.

◇ 성 = 쑥스럽군. 어쨌든 지금이 한국록 30년을 돌아볼 때는 때인 것 같아. 나나 윤아나 팝을 국악보다 1백배 아니 1천배는 더 아는 세대들이잖아. 아는 국악이래야 군밤타령 정도?

근데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 의식 밑바닥엔 국악 정서가 깔려있어 결국 록을 해도 트로트적 정서가 나온다는 거지. 우리는 어릴때 도레미를 배웠지 궁상각치우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록이 남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 자우림을 보면 모방 차원을 넘어 자신들만의 음을 내고있거든. 한국록 사운드가 자리잡은 단계라고 봐. 이제 한국록을 엄밀히 정리해야하는데 그건 비평가들이 해야할 몫인 것 같아.

정리 =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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