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완의 록&論] 테크노시대의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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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 몇년간 시도된 테크노의 주류 진입이 가히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지만, 그 이유가 테크노의 빈약함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쪽에서는 테크노를 약간 폄하하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테크노가 세기말.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흐름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테크노의 주류 진입작전 실패는 오히려 얼터너티브 록의 매력이 급감한 이후에 생긴 팝 시장의 공백을 서둘러 메워 보려던 미국쪽 주류 음반업자들의 섣부른 장삿속에 그 원인이 있다. 테크노의 음악적 기반이 여전히 '지하' 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프로디지.케미컬 브라더스와 더불어 테크노의 부상을 주도했던 밴드 '언더월드' 의 새 앨범이 나왔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에 '본 슬리피' 라는 노래를 실어 일약 세상에 알려진 그들인데, 이젠 어느덧 여러 면에서 대가의 냄새가 풍긴다. 그들의 음악은 매우 세련되어 있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합성한 '보쿠 피시' 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번 앨범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약간 역동성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빈틈은 없다. 거의 모든 사운드의 사용이 적절해 보인다.

테크노는 흐름의 음악이다. 흐름을 이어가는 동시에 어떻게 변화와 굴곡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하다. 언더월드의 세련미가 빛을 발하는 대목도 거기다.

똑같은 샘플러와 비슷비슷한 악기들을 가지고 만드는 음악이 테크노다. 그러나 그 사용에 따라 독특한 개성들이 배어나오는 걸 보면 아무리 기계에 의존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여전히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기완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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