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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시간·표절감시 방송사에 시정압력 '시청자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김경섭 (68) 씨. 최근 신문사로 두툼한 편지 한통을 보내왔다. 김씨의 편지에 담긴 것은 방송사가 예고한 편성 시간과 실제 방영 시간의 차이. 보름 정도 방송 3사의 4개 채널을 지키고 앉아 방송사들이 어긴 시간을 집계했다.

방송사들이 지연시킨 시간의 합계는 수백분에 이르렀다. 일어 번역전문가인 김씨는 "업무 관계로 위성방송을 통해 일본 TV를 자주 시청하는데 NHK의 경우 예고시간과 30초도 어긋나는 경우가 없다" 고 꼬집었다.

김씨가 시계를 옆에 두고 보름간 TV를 감시한 결과를 방송사 대신 신문사에 보낸 것은 방송사의 시청자 불만 처리가 형식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김씨는 "몇 차례 방송 관련 불만 사항을 시청자 전화를 통해 말해봤지만 무성의한 대답 뿐이었다" 고 말했다. 요즘 방송의 잘못된 점을 감시하고 이를 시정시키려는 시청자들의 눈길이 하루가 다르게 매서워지고 있다.

예전엔 TV에 불만이 생길 경우 방송사에 항의 전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씨의 경우처럼 치밀하게 문제점을 조사할 뿐 아니라 시청자 단체나 방송위원회 등을 통해 방송사에 압박을 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시청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커다란 파장을 부른 최근 사례는 바로 MBC드라마 '청춘' 의 일본 표절 사건. PC통신의 시청자 코너에 항의가 잇따라 접수될 때까지만 해도 방송사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남에 사는 한 시청자가 손수 일본 드라마의 테이프를 복사해 신문사와 방송위원회에 고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방송사는 중도 하차를 결정했고 방송위원회는 사상 처음 일본 표절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현재 서울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 등 시청자 단체엔 방송사들의 일본 표절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마포에 사는 한 사진 업자는 모 방송사가 예고한 '노인에 무료 영정 사진 제공' 관련 프로그램의 '위험성' 에 대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얘기는 "노인의 영정을 무료로 찍어준다고 하면서 1만8천원을 액자값으로 받는 사진관이 많은데 그 경우 업자에겐 8천원의 이익이 돌아간다" 는 것. 그는 "방송사가 취재한 곳이 혹시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 며 "철저하게 방영 내용을 감시해달라" 고 당부했다.

시청자들의 방송 감시가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은 미디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관련 NGO들이 대학생.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에 적극 나서면서 더 이상 방송을 일방적.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또한 올 들어 방송3사가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옴부즈맨 프로' 를 확충하면서 방송 비평이 일반인에게도 한결 친숙해졌다.

여성민우회미디어운동본부 조정하 사무국장은 "방송사의 시청자 관련 부서는 과시적인 차원에 머무는 느낌" 이라면서 "시청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방송고발 이렇게]

방송사 시청자 전화를 이용하는게 전통적 해소 방법이나 시민 단체나 방송위원회를 이용하는 것이 때론 효과적. 서울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 (02 - 737 - 0061) 는 불만을 접수하면 프로그램을 집중 분석한다. 결과에 따라 방송사에 항의 공문을 보내거나 방송위원회 등 관계 당국에 고발한다. 방송위원회 시청자홍보부 (02 - 3219 - 5128)에 불만을 접수할 경우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 에서 내용을 분석, 방송사 징계 여부를 결정하고 결과를 고발자에게 알려준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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