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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흑백인생 화끈한 색입히기-'플레전트빌'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태초부터 색 (色) 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색을 잊고 산다.

왜 그럴까? 영화 '플레전트빌 (pleasantville)' 은 그 이유를 '마음의 벽'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플레전트빌' 은 말 그대로 '즐거운 마을' 이다. 날씨는 사시사철 쾌청하고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항상 웃는 낯이다. 농구를 해도 공을 던졌다 하면 골인. 반듯한 도로와 깨끗한 가옥들. 부러울 게 하나 없는 파라다이스다.

그러나 이곳은 따분하기 짝이 없는 흑백의 세상. 사람의 피부까지도 흑백 뿐이다. 이런 건조한 세상에 천연색으로 컬러를 입혀가는 영화가 '플레전트빌' 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흑백에서 컬러로 점차 변해가는, 그 신기한 화면의 마술이 어느새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를 적신다.

이야기의 시발점은 데이비드 (토미 맥과이어) .늘 낙원을 동경하던 데이비드의 유일한 즐거움은 50년대 시트콤 '플레전트빌' 을 보는 것. 어느날 여동생 제니퍼 (리즈 위더스푼) 와 채널을 놓고 다투다 리모컨이 박살나는 순간, '백 투 더 패스트'.

둘은 그 흑백의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세상은 당혹스럽다. 복고풍의 촌스런 옷과 헤어 스타일, 불에 닿아도 타지 않는 손수건, 표지만 그럴싸하고 속은 백지인 도서관의 책들, 키스도 모르는 사람들. 이런 풍경에 둘이 감정과 섹스, 예술의 혼을 불어 넣자 점차 마을은 컬러로 변해간다.

성에 눈뜨면서 자신의 색깔을 찾기 시작한 데이비드의 엄마 베티 파커 (조안 앨런) 는 말한다.

"이제 어쩌지, 살구빛 얼굴에 입술까지 붉어졌어. " 중반까지 로맨틱 코미디풍으로 달리던 영화는 막판에 주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햄버거를 팔면서도 햄버거 하나 만들 줄 모른 채 흑백논리의 도그마에 빠져 사는 남자. 마을 사람들을 우민화해 흑백세상의 통치자로 군림하는 시장. 결국 그들까지도 태초의 색에 눈뜨는 막판 반전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왜 새 밀레니엄의 문턱에서 이 영화는 50년대로 돌아갈까. 2차대전 후 흑백의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시절에 대한 일종의 반성으로 읽힌다.

이런 각성은 곧 다가올 '유쾌한' 21세기의 자양분이 되기도 할 테니까. 그러나 이런 일방적 시각 또한 이 영화의 미덕은 아닐 터이다. 각자 상상력과 입장에 따라 마음 속으로 서로 다른 색을 입힐 일이다.

조안 앨런의 연기와 1천7백여 가지의 영상 판타지를 연출한 크리스 와츠의 시각효과도 눈여겨볼만. 10일 개봉.

정재왈 기자

Note: "다시 회색으로 화장을 해봐. 깜쪽같이 속일 수 있어. " (컬러로 바뀐 아내를 보고 데이비드의 아빠 조지 파커가 한 말). 진실은 언제라도 드러나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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