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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쇼] 채시라·김희애의 '30대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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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김희애 (32) 와 채시라 (31)가 만났다. 연기의 동반자로, 경쟁자로 친하게 지내온지 벌써 16년째. 지난 83년 청소년 잡지 '학생중앙' 에 김희애는 패션모델로, 채시라는 표지모델로 첫 인연을 맺었다.

각각 고2, 중3 때였다. 연기 해수도 만만찮아 17, 15년에 이른다. 그들이 5일 동시에 선보인 일일극 KBS '사람의 집' (채시라) 과 MBC '하나뿐인 당신' (김희애)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친다. 김희애는 3년여만의 컴백에 10년만의 일일극, 채시라는 연기생활 첫 일일극이라는 의미도 겹쳐진다.

게다가 세월은 무서워 어느덧 30대로 훌쩍 접어들었다. 갈수록 젊은 스타들로 판이 짜이는 우리 드라마에서 30대의 자리는 어디일지. 싫든 좋든 성숙된 연기를 보여야 할 30대 길목에 선 그들이 새롭게 깨달은 인생과 연기를 들어본다. 나이차는 1년이지만 '언니' '동생' 분위기가 사이좋은 자매같다.

◇ 김희애 = 스무살 어름에는 30대가 상상이 안됐어.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느껴졌지. 그런데 막상 30대가 되니까 그렇지 않아. 후배들은 발랄한 감수성연기로 치고 들어오고…. 쫓기는 느낌이야.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지. 김혜자.나문희 등 많은 선배들처럼 말이야.

◇ 채시라 = 아직 쫓긴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나이 앞에 3자만 붙었을 뿐이에요.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그때 그때가 가장 좋은 나이아니겠어요. 현재를 잘 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죠.

◇ 김 = 아무래도 연기는 살아온 과정과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 결혼하고 아기도 키워보니까 나도 많이 변했어. 20대엔 연기를 불타는 정열로 생각했지. 상상으로 했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현실로 바짝 조여오는 느낌이야. 그 현실감을 이제 살아온만큼 진솔하게 표현해야 되겠지.

◇ 채 = 연기는 할수록 어렵다는 선배들 말에 공감이 가요. 예전엔 겸손의 말로만 여겼는데 이제 그 뜻을 알겠어요. 처음에는 갖고 있는 재능을 보여주면 됐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바닥난 상태잖아요. 다만 성격이 낙천적이라 일이 생기면 부담없이 달려드는 편이지만요. 얘기는 드라마 쪽으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배역이 두 사람의 현재 상황과 다소 유사하다. 김희애는 사업이 부도난 남편 대신 가정을 끌어가는 당찬 주부로, 채시라는 자기밖에 모르는 신세대 미술학도로 나온다.

◇ 김 = 이름 (말희) 부터 발랄하던데….

◇ 채 = 언니도 그렇지만 우린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역을 많이 맡았잖아요. 예쁜 대학생 한번 못했지요. 이젠 좋은 시절도 '다 갔구나' 생각하니 거꾸로 활달한 역할이 좋아졌어요. 그전엔 일일극은 나이들어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학창시절 오래 달리기를 잘했죠. 그래서 마라톤 같은 일일극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 김 = 우리도 소위 트렌디 배우도 될 수 있었을텐데. 한때는 왜 '질투' 같은 드라마를 안시켜주나 생각도 했지. 그래도 시라는 '파일럿' 을 해보았잖아 (웃음). 그런데 최근 선배 이미숙이 나온 '정사' 를 보고 너무 반가웠어. 우리가 뛸 수 있는 나이가 늘어났다고나 할까. 여자 연기자의 활동폭이 넓어져 좋았어.

◇ 채 = 많이 나아진 셈이지요. 선배들은 대부분 20대만 지나면 바로 아줌마로 빠져버렸잖아요. 그래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할리우드에선 30~40대 배우들이 각광받아요.

◇ 김 = 요즘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자주 해. '너희들은 너무 좋겠다. 무궁무진하게 일할 수 있어서' 라고. 우리는 어쩌면 이런 첫 세대일 수 있고, 선배들 세대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 채 = 그래서 우리의 위치가 중요해요. 언니처럼 다시 활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연륜이 쌓인 까닭일까. 그들은 달라진 드라마 풍토에도 한마디씩 잊지 않았다.

◇ 김 = 우리 바로 밑 세대와도 색깔에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최근 활성화한 '매니저 시스템' 에도 조심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진정한 배우를 오래두고 키우기보다 '기획상품' 처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누구를 좇아가면 2.3등밖에 안되잖아.배우의 재산은 결국 개성인데.

◇ 채 = 정말 우리 땐 어머니밖에 없었죠. 스스로 화장가방 챙겨들고, 옷보따리 짊어지고…. 자칫 스타라는 것이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자신을 과시하는 방편으로 변질되어선 안됩니다. 그런데 학교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요.

◇ 김 = 전혀. 첫 녹화 때 선배들이 얼마나 잘들 하시는지…. 학교에서 너무 에너지를 소비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많았어. 나로선 연기와 강의의 병행이 무리인 것 같아.

◇ 채 = 요청이 많았지만 저도 아직은 대학강단에 서고 싶지 않아요. 현장에서 배울 게 많거든요. 대학생 시절에도 느꼈지만 TV에서 뛰는 연기자의 강의보다는 카메라.조명.편집실 등 실습장비와 연기론에 대한 학문적 정립이 시급하다고 봐요. 나이는 엇비슷하지만 '처지' 는 크게 다른 그들. 7개월된 아들 기현의 엄마인 김희애와 미혼인 채시라. 대화의 매듭은 결혼과 연기문제로 옮아갔다.

◇ 김 = 결혼으로 정말 어른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3년밖에 안됐지만 비로소 나의 가족이 생겼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됐어.

◇ 채 = 얼마전 언니집에 아기를 보러 갔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순리라는 부모님 말씀이 실감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좋아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란 생각입니다.

◇ 김 = 아니야. 그래선 안돼.

◇ 채 = 알았어요. 주위에선 언니나 나나 야무지고 똘똘하고 냉정한 인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빈틈이 많잖아요. 모두들 양면성이 있거든요. 하나만 보면 안되지요.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겠지요.

정리 =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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