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 '코스트 킬러' 카를로스 곤 르노 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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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코스트 킬러'. 요즘 일본에선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닛산 (日産) 자동차와의 자본제휴 이후 구조조정을 위해 파견한 카를로스 곤 (45) 수석부사장의 행보가 화제다.

코스트 킬러란 별명에서 보듯, 그는 이미 르노 본사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매서운 칼날을 휘두른 것으로 유명하다. 닛산의 구조조정 역시 르노 못지않게 살벌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되자 임직원들은 안절부절이다.

카를로스 곤 수석부사장은 지난달 27일 르노와 닛산의 54억 달러 규모의 자본제휴 계약 체결 후 르노측 대표로 닛산에 파견된 경영진. 르노의 루이 슈바이쳐 회장으로부터 파견 명령을 받자마자 일본으로 날아와 요즘 현황 파악에 한창이다.

두 회사는 곤 부사장이 닛산의 하나와 요시카즈 (土高義一) 사장과 협력, 닛산의 구조조정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닛산측은 사실상 곤 부사장이 전권을 휘두를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갈수록 떨어지는 닛산의 주가를 오름세로 반전시키고 3백45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의 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 것. 브라질 출신의 곤 부사장은 세계적 타이어 제조.판매업체인 미셰린의 북미지역 담당 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6년 르노의 슈바이쳐 회장의 눈에 띄어 영입되었다.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다 국제 경영에 밝다는 점이 발탁 이유. 이후 곤 부사장이 르노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과정은 자동차업계에서도 화제다.

3년 동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는 '코스트 킬러' 외에 '미스터 수리공'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기본적인 방향은 구매방식.부품업체와의 협력관계 개선 등을 통한 생산비 감축.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9천 명을 해고했고 부품 공급업체수를 1천 개에서 3백 개로 줄였다.

이같은 방식으로 자동차 1대당 5백달러까지 생산비용을 감축했고, 97년까지 적자였던 르노는 지난해엔 15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현재 그가 염두에 둔 닛산 회생책은 비용 감축과 제품 전략 변경. 먼저 감원과 생산비 절감 등을 통해 올해 5억 달러, 오는 2000년엔 10억 달러까지 비용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또 현재 30여 개에 이르는 자동차 모델도 10개로 줄일 방침이다.

그러나 곤이 아무리 비용감축의 달인 (達人) 이라 해도 관료주의적 조직문화가 팽배한 닛산에서 대량해고와 해외공장 폐쇄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르노의 이사진이 3명인데 비해 닛산은 37명이어서 수적으로도 열세다.

미 경제주간지 비지니스 위크도 최신호 (4월12일자)에서 "곤은 점령군처럼 밀어 부치는 강경 전략보다 유화적인 협력관계를 조성해야 할 것" 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양측의 경영불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곤 부사장도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 "우리측 전략의 성패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데 달려 있다" 며 엔지니어 상호 파견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겠다고 밝혔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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