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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열고 살다 피습…전호주참사관 임기마치고 귀국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난 3일 오전 김포공항. 주한 호주대사관 경제참사관이던 존 필빔 (45) 은 가슴 한쪽에 씁쓸한 기억을 간직한 채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겨웠던 한국 생활을 마치는 아쉬움, 그리고 아직 아물지 않은 가슴 한복판의 흉기 자국. 필빔은 지난달 1일 오전 4시50분쯤 서울성북구성북2동 자택에서 흉기를 들고 침입한 강도에게 피습당해 가슴을 크게 다쳤다.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겨우 한달 남짓 남겨놓은 때였다.

격투 끝에 간신히 강도는 물리쳤지만 2층에서 잠자던 세 딸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기어오르다 과다출혈로 실신,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병원에 누워있는데 악몽을 꾸는 것만 같더군요.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작은 언덕, 처음 맛보고 반했던 무김치, 친절했던 한국인 이웃들…. 모든 게 정겨운 추억들이었으니까요. " 사건이 나던 밤 필빔은 여느 때처럼 현관문은 물론 대문조차 잠그지 않았다.

그가 살던 캔버라시에서 생긴 버릇이었다.

"그 얘길 하니 형사들이 어이없어하더군요. 하지만 몇해의 서울생활로 한국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요. " 텁수룩한 머리카락에 두꺼운 안경을 낀 채 세 딸의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곤 해 주민들로부터 "이웃집 아저씨 같다" 는 말을 자주 듣던 필빔.

"서울에 도착하던 날 시내 곳곳에 만발한 개나리를 보고 마치 고향에 온듯한 푸근함을 느꼈어요. 첫날부터 한국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만 품고 떠나지 못해 가슴이 아프네요. "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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