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억 국내 최대과징금 받은 퀄컴 “한국에 R&D센터 설립 추진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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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분야의 세계적 첨단기술 업체인 퀄컴이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 설립을 추진한다.

이동통신 분야의 세계적 첨단기술 업체인 퀄컴이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을 추진한다.

차영구(62ㆍ사진) 한국퀄컴 사장은 최근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 덕을 많이 본 퀄컴이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R&D 거점을 두는 방안을 최근 미국 본사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본사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 연구소 운영에 들어갈 걸로 본다”고 덧붙였다. 퀄컴은 한국 시장에서 로열티를 부당하게 매긴 혐의 등으로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인 2600억원의 과징금을 7월 부과받은 바 있다. 그래서 연구소 설립의 또다른 배경이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차 사장은 서울 근교인 경기도 성남 판교 인근을 R&D센터의 유력 후보지로 꼽았다. 규모는 연구원 20여명 수준이다. 차 사장은 2004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군에서 국제전략가로 이름을 떨쳤다.서울대와 경희대 초빙교수와 팬택 상임고문을 지내기도 했. 그는 "한국군과 미군이 한 팀이듯 퀄컴도 큰 틀에서 삼성ㆍLG와 한 팀”이라고 강조했다.

-R&D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배경은.

"기술협력과 함께 이미지 쇄신의 의도가 있다. 6월 한국퀄컴 사장에 부임한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퀄컴에 대한 한국 정부와 업계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내 숙제라고 생각했다. 자체조사 결과 퀄컴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매우 좋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뒤에서 단물을 빼먹는 회사' '독점 지위를 활용해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회사' 등이었다. '특허기술로 똘똘 뭉친 회사'라든가, '삼성ㆍLG와 15년 간 동반 성장해 온 파트너' 같은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했다고 보나.

"‘베푸는 기업’의 이미지다. 한국기업과 동고동락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겨갔지만 한국사회에 해 준 게 별로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우리가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을 얻어맞은 것도 ‘얌체’ 이미지 탓이 아닌가 싶다. 번 돈의 일부를 한국사회에 되돌려야 공존 상생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R&D센터 건립 말고 다른 계획은.

"기술력 있는 무선통신 벤처업체 등 10여 곳에 투자할 생각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인 휴대전화기 업체 팬택계열에 최근 12% 지분투자를 해 2대 주주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징금에 대한 대응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음달 이후 공정위에서 최종결정서를 받으면 소송을 통해 시비를 가리겠다. 공정위가 감정적으로 판단한 부분,비논리적인 부분이 적잖다고 본다. 우리 칩을 사용하면 로열티를 깎아주는 '로열티 차별화' 관행은 1993년 계약 때 한국정부가 퀄컴에 요청한 일이다. 물증 서류도 있다. 한국정부가 이제 와 이를 불공정거래 행위로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심재우 기자

◆퀄컴=1990년대 아날로그 이동통신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에 관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두고 지난해 111억 달러(약 14조원) 매출에 로열티 수입 등으로 무려 31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매출의 20%를 R&D에 투자해 6만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는 '지식기업'이다. 매출의 35%는 한국 업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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