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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전위부대’ 금속노조마저 균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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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8일 오후 평택공장에서 민주노총 탈퇴와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쌍용차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민주노총에는 치명타를 안길 전망이다.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해 온 금속노조 지부다. 완성차 업체 중에서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도 쌍용차가 처음이다. 대규모 사업장이 금속노조를 탈퇴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금속노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 노조 탈퇴를 계기로 법원과 채권단의 회생계획안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경영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8번째 탈퇴=올해 3월 이후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는 17개다. 쌍용차가 18번째가 됐다. 탈퇴 노조 중에서 민주노총에 타격이 큰 데는 KT다. KT는 조합원이 2만8689명으로 최대 노조다. 이 노조 때문에 민주노총의 산별조직인 IT연맹이 사실상 와해됐다.

지금까지 탈퇴한 노조들이 민주노총에 미들급 이하의 타격을 줬다면 쌍용차 노조는 헤비급에 해당한다. 우선 조합원 규모가 3508명으로 적지 않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파업을 할 때면 어김없이 금속노조가 선봉에 섰다. 민주노총 관계자가 총파업 때면 “믿을 데는 금속노조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쌍용차 노조의 탈퇴 이유는 다른 데와 별 차이가 없다. 지나친 정치투쟁과 강경일변도의 노동운동 방식으로는 현장 조합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날 투표에 참여한 이모(46)씨는 “상급 단체가 자기 이익만 챙기고, 같은 노조원끼리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데도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는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고 방관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의 위기 징후는 그전에도 있었다. 최근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 선거에 출마한 홍성봉 후보는 선거 슬로건으로 ‘잘못된 금속노조 확 바꾸고 패권적 정파운동 종식시킨다’를 내걸었다.

홍 후보는 선거 홍보물에서 “금속노조는 현대차만의 투쟁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우리는 투쟁의 선봉에서 철저히 희생만을 강요받았다”고 비판했다. GM대우 지부는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금속노조의 7.4% 인상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금속노조가 쌍용차 파업 지원을 위한 동조 파업을 결의했을 때도 외면했다. 금호타이어 지회도 최근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무노동무임금 원칙도 받아들였다. 기아차 지부 대의원들은 지난달 28일 ‘현재 기업지부는 올해 9월 30일까지만 유지한다’고 한 금속노조 규약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앞으로 쌍용차 노조는 상급 단체 없는 독립 노조의 길을 걷기로 했다. 정치투쟁보다 조합원 복지를 챙기는 실리 위주의 노동운동이 확산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권혁태 노사갈등대책과장은 “금속노조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완성차와 대기업 노조에서 파열음이 광범위하게 생기고 있다”며 “이는 개별 기업의 사정을 무시하고 지침에 의한 일률적인 교섭을 하는 산별노조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회생 전기 될 듯=쌍용차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채권단은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노사 관계가 안정돼야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쌍용차의 민주노총 탈퇴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 주 회사가 제출할 회생계획안이 통과할 가능성도 커졌다.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8일 “이번 투표 결과가 법원과 채권단의 회생계획안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인 투자 유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현 노조 집행부)는 “노조 측 총회 소집권자에게 요청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고 투표를 진행했으므로 무효”라고 밝혀 앞으로 법적 다툼이 이어질 소지가 있다.

김기찬·이승녕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올해 민주노총 탈퇴한 주요 노조

KT·쌍용차·인천지하철·울산NCC·영진약품·승일실업·진해택시·그랜드힐튼호텔·영일운수·단국대·인천국제공항공사·서진운수·충북지역 상용직노조·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노조·울산컨테이너터미널(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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