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맥짚기] 다세대주택 규제풀면 무조건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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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건설교통부의 행정 스타일이 예전과 영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주거환경이나 도시질서 유지 등에 필요한 규제까지 풀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가 하면 최근 기업과의 대화에서는 "더 도와줄게 없느냐" 며 적극적으로 나와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선진국에선 공무원이 앞장서 기업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의아스런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관주도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이제 어떻게 하면 국민이나 기업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챙기는 게 관청의 주요 업무다. 하지만 풀어야 할 것과 강화해야 할 분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환경이나 국민보건, 국가질서 등과 관련된 규제는 되레 더 강화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건교부가 최근 개정해 오는 5월9일부터 시행키로 한 다세대주택 건축기준 완화방안은 사유권만 강조한 나머지 도시환경을 너무 경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다세대주택은 그동안 공동주택으로 간주해 인근 대지경계선으로부터 최소한 1m이상 떼어 건축하도록 했으나 이번에 단독주택과 같이 50㎝만 떼도 신축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다가구를 다세대주택으로 얼마든지 용도변경할 수 있는 길도 터놓았다.

자투리땅 개발 활성화를 통해 전셋집 건설을 촉진시켜야 하는 절박한 처지도 아닌데 난개발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다가구.다세대주택 건축기준을 서둘러 완화한 것은 앞으로의 도시발전을 생각할 때 부작용의 우려가 크다.

다가구.다세대주택은 주차장난을 불러일으켰고 옆집과 너무 붙여 지어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따른 분쟁을 낳는 등 그동안 여론이 곱지 않았다. 물론 서민용 주거로 인기가 높았던 이들 주택은 전셋값을 안정시킨 순기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공동주택이나 다를바 없는 다세대주택 건축기준을 대폭 푼 것은 건교부가 너무 규제완화에만 집착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강하다. 더우기 다가구를 무턱대고 다세대 주택으로 용도변경해 줄 경우 세입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다가구는 단독주택이어서 임대차 계약서에 번지수만 표시해도 별 이상이 없지만 다세대는 동호수를 정확하게 기입하지 않으면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세입자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상실돼 전세금을 날리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선의 이런 맹점들은 왜 건교부 정책 입안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최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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