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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정치색에 물든 미국 의료보험 개혁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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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이 또다시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일각에선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이 성공할 경우 ‘죽음의 위원회(death panels)’가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용어는 지난 대선 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발언에서 유래했다. 페일린은 의료보험 개혁 이후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를 만들면 노인들이 제대로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마이클 스틸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노인들에 대한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65세 이상을 위한 정부 주도의 의료 서비스인 ‘메디케어(Medicare)’를 사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이와 관련된 예산 삭감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61년 메디케어 도입 당시 다른 공화당원들과 함께 이를 사회주의적 제도라고 비난했다. 레이건은 당시 “우리는 후손들에게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누렸던 시절을 얘기하며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레이건은 결국 반대 의사를 철회하긴 했지만 81년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메디케어 예산 삭감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당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이 메디케어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양당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스틸 위원장을 의료보험 개혁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게 했다. 스틸은 “메디케어가 최근 몇 년간 국가 재정을 적자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메디케어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공화당이 가장 영향력 있는 유권자들 중 하나인 노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일단 반대하고 나중에 흥정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스틸 위원장이 내놓은 ‘노인 건강 관련 법안’에도 현 메디케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 그는 민주당이 노인들의 심장병 수술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려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반대가 노년층을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스틸 위원장의 주장이 현명하지 못하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당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며 메디케어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부 의원은 독자적인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스틸 위원장은 이런 의견들을 무시하고 공화당이 메디케어를 지켜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번 투쟁을 활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반대에 집착하는 정당, 국정 운영 감각이 부족한 정당으로 추락하고 있다.

돌리 맥매너스 LA타임스 칼럼니스트
정리=최익재 기자, [LA타임스=본사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