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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벌집촌' 사라진다…재개발사업 확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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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침마다 공중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우산을 쓰고는 제대로 지날 수 없는 미로에 둘러싸인 채 방 한칸.부억 한칸짜리 허름한 집들 - . 60년대 초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후 '한강의 기적' 을 일궈낸 근로자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던 구로공단 옆 마지막으로 남은 '벌집촌' 이 자취를 감춘다.

서울시는 18일 벌집들이 밀집한 구로구구로3동773의1과 782의1 일대를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양대웅 (梁大雄) 구로구부구청장은 "구역내 1만2천여평을 용적률 2백30%로 재개발했을 때 현재 있는 1천3백여가구를 다 수용할 수 있을 지 걱정된다" 며 "서울시의 파격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제대로 개발될 것" 이라고 말했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주민들은 재개발조합을 설립, 구청장의 인가를 받은 뒤 시공사를 선정해 설계.구청장 시행인가를 거쳐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통상 2년 정도 걸려 벌집촌은 2001년께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벌집촌은 '여공' 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곳으로 국가지정 공단인 구로공단의 변천사와 명암을 같이 해왔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61년부터. 청계천 복개와 함께 옮겨온 1천2백여가구가 처음 나무판자로 아무렇게나 지은 두세평짜리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말이 집이지 어른키보다 낮은 처마 밑에 달랑 부엌 하나 딸린 단칸방이 전부다.

벌집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 것은 63년 박정희 (朴正熙) 정부가 수출주도 전략을 펴면서 구로구 일대를 국가지정 공단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가난을 피해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열대여섯살 전후의 미혼여성들이 공단내 직물공장 여직공으로 속속 취업하면서 값싼 벌집을 차지했다.

이들은 벌집을 '안식처' 로 삼아 잠 안자고 배를 주리며 악착같이 '성공' 의 꿈을 키웠다.

한때는 6만여명의 여직공들이 기거했다.

9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노동집약적인 섬유공장들이 채산성이 맞지 않아 하나둘씩 문을 닫고 동남아와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벌집촌도 생기를 잃고 급속도로 슬럼화했다.

여직공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 '코리안 드림' 을 품고 온 동남아 근로자들과 중국동포들이 메웠다.

그나마 최근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엔 이들마저 하나둘씩 떠나고 이제는 일용 막노동자의 '쪽방' 구실을 하고 있다.

◇ 벌집 = 2.5~5평 남짓되는 공간에 단칸방.부엌 하나가 고작이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무허가 건물 80동을 포함, 세입자만 해도 9백10가구에 이른다.

세입자들은 보증금 2백만원에 월 5만~10만원 전후의 월세를 내고 있다.

글 = 장세정.사진 =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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