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망자 추가는 예정된 일 … 차분히 대유행 준비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0호 10면

신종 플루 확산이 우려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전시 유성구는 3일 민방위교육장에서 초·중등 보건교사 등 교육시설 종사자들과 노인회지회·통장협의회 등 민간 단체 회원들을 모아 놓고 신종 플루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유성구청 제공]

“오늘 4교시 끝나고 갑자기 방송으로 휴교한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우리 학교 친구 5명이 (신종 플루) 확진환자 판정을 받았대요. 선생님이 모두 진단서를 끊어오라고 하셔서 병원에 들렀어요. 열 같은 건 없는데, 우리 학교 애가 걸렸다니 걱정이 좀 돼요.”(목동중 3학년 김모군)

신종 플루, 이제는 공포 관리다

“둘 다 열이 좀 나기에 왔어요. 크게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언론에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마스크를 쓴 채 손을 꼭 잡고 기다리던 20대 대학생 커플)

4일 오후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거점병원인 서울 이대목동병원. 본관과 떨어진 응급센터 앞에는 컨테이너 건물 2동과 천막으로 햇빛을 가린 대기실이 마련돼 있었다. 컨테이너 하나는 성인, 다른 하나는 소아청소년 신종 플루 관련 환자를 진료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이틀 전 네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데 이어, 이날 오전에는 신종 플루 환자의 뇌사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첫 사망자가 나온 직후에 비하면 진료실 분위기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다. 이 병원의 전윤희(감염내과) 전임의는 “한동안 별 증상이 없어도 막무가내로 검사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거의 패닉 상태였다”며 “요즘은 실제 감염 환자가 많이 오지만 대부분 해열제 정도로 치료할 수 있는 경미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보실 담당자도 “지난주부터 진료환자가 줄다가 어제 그제(네 번째 사망자 발생 후)부터 조금씩 다시 늘고 있다”며 “학교에서 진단서를 떼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이 병원에선 하루 100여 명이 진료를 받고 있지만 입원환자는 없다.

이날 둘러본 신촌연세병원(마포구)·서울적십자병원(종로구)·서울백병원(중구) 등 다른 거점병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전체적으로 진료 환자가 줄고 있는 가운데 실제 감염자로 확인되는 비율은 높아졌다. 하지만 대부분 감기 정도의 증상으로, 입원환자는 없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일까, 아니면 대유행의 정점은 지나간 걸까. 과연 현 상황은 얼마나 걱정해야 할 수준인가.

환자 가족들까지 눈총 받아
보건복지가족부의 중앙인플루엔자 대책본부에 따르면 4일 현재 전국 의료기관에서 신종 플루 감염이 확인된 환자는 5017명이다. 이 가운데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환자는 뇌사자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치사율은 0.1%가 안 된다. 예년의 계절성 독감과 별 차이가 없다.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은 “사망자가 많은 멕시코 등을 포함하면 전 세계적으로 치사율은 1~2%대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를 볼 때 현재의 신종 플루는 그렇게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일반인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지하철에서 재채기만 해도 대단한 전염병 환자 취급을 받는다. 환자로 밝혀지면 그 가족들까지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사두려는 사람이 늘면서 각종 불법매매가 성행하기도 한다. 지난 3일엔 처방받은 타미플루를 먹지 않고 인터넷으로 판매하려던 고등학생이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

고려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10월, 11월에 감염자가 훨씬 늘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조심해야 하는 건 맞다”며 “하지만 지나친 불안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난달 폐렴 합병증으로 인한 신종플루 사망자가 나온 뒤 건강한 10~20대까지 폐렴 백신을 맞으려 하는 바람에 한때 폐렴 백신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문에 정작 폐렴 합병증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들이 발을 구르는 일이 벌어졌다. 김 교수는 “사망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 정부나 언론이 너무 뜻밖의 사태인 양 우왕좌왕했던 것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지나치게 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첫 사망자 발생 후 정부 우왕좌왕
지난 5월 초 국내 감염자가 처음 발생한 뒤 정부의 대응조치는 대체로 매우 신속하고 적절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철저한 방역체계로 해외여행철이었던 여름에도 외국에 비하면 감염자가 적게 나타났다.

개학을 앞두고 사정이 달라졌다. 환절기와 겹쳐 대규모 감염 사태와 중환자나 사망자 발생이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그에 대한 준비가 느슨했던 게 문제였다. 8월 15일 첫 사망자가 나오고 확진 환자가 하루 100여 명으로 급증하자 언론의 질책에 당황한 대책본부는 20일 서둘러 거점병원과 약국을 정해 발표했다. 현장 확인을 전혀 하지 않은 채였다. 거점의료기관들의 허점을 언론이 지적하면서, 성급했던 발표는 국민의 불신과 불안감을 자극했다.

여기에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이어졌다. 다국적 제약사가 생산하는 치료제인 타미플루 확보 문제가 이슈화되자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특허 중지를 고려하겠다”고 했다가 발언을 철회했다. 이는 타미플루 부족 사태를 대비한 암거래는 물론,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 발표 등 엉뚱한 혼란까지 불렀다. 또 백신의 우선접종 순위를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방부 등 관계부처 수장들이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신종 플루 대책자문위의 박승철(삼성서울병원 교수) 위원장은 “일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다. 거점병원의 한 의사도 “인터넷 포털 뉴스의 제목만 보고 불안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신종 플루 대유행 시나리오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2만여 명이 사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기 위한 복지부의 내부 자료가 민주당 국회의원에 의해 공개되자, 이는 일부 언론과 온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전국 의료기관들은 공포 속에 달려온 환자들로 한동안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4일 거점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도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이번엔 증상도 없이 죽었다는 얘길 듣고 걱정돼 왔다”고 말했다. 2일 네 번째 사망자가 나왔을 때 일부 언론에서 ‘콧물이나 기침 등 호흡기 증세가 없었고 폐렴 합병증도 없었다’고 강조해 제목 등으로 단 것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분은 이전 신종 플루 사망자들과는 매우 다른 점이어서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사실 그 환자는 고혈압·당뇨와 함께 말기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던 고위험군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전염병 경보 격상 놓고 논란
정부는 4일 신종 플루에 대한 전염병 경보 수준을 현행 ‘경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망자가 4명으로 늘고 뇌사자도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대응이 오히려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감염 수준에서 이 정도 사망자나 중환자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괜히 그런 논의를 꺼내 국민에게 뭔가 더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교장의 판단에 따라 휴교할 수 있다”며 “치료제나 백신의 수급도 지나친 불안심리로 인해 국민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별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우주 교수는 “우리 병원 간호사들도 처음엔 공포심을 갖고 타미플루를 구하려고 난리였지만 막상 많은 환자를 직접 대해 보더니 별게 아니라며 진정됐다”면서 “앞으로 중환자나 사망자는 분명 더 많아지겠지만 국민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각자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서 예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종 플루가 기존 독감에 비해 위험하진 않지만 유행 규모가 크고 젊은 층의 감염자가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정부는 그에 맞는 대응 체계와 의료기관의 중환자 집중관리 시스템을 차근차근 점검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