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두 기술유출 공방싸고 미국-중국 갈등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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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핵무기 기술의 중국 유출 의혹사건을 두고 양국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16일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저자세를 취할 생각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리자오싱 (李肇星) 주미대사는 이날 인민일보와의 회견에서 "중국의 미핵무기 기술 유출설은 양국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과 동반자가 될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를 미국이 선택하라' 는 경고다. 그는 "중국과학자들로부터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편지를 많이 받고 있다" 고 덧붙였다.

주룽지 (朱鎔基) 총리도 지난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미 평화관계를 깨뜨리려는 미국내 반중국세력들의 음모" 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의 경우 대만을 전역미사실방위 (TMD) 체계내에 포함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저지할 필요성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도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이 이 사건을 정치쟁점화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은 15일 "중국은 미 안보에 결정적인 해를 입혔다" 면서 "행정부는 중국과의 통상정책을 재정립하고 과학기술 교류를 즉각 중단하라" 고 촉구했다.

2000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패트 뷰캐넌 등 공화당 후보들도 클린턴 행정부가 핵무기 유출정보를 알고도 신속히 대응하지 않은 것은 중국이 민주당에 선거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미 상원은 이번주부터 80년대 미국 핵기술에 대한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청문회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 언론들도 '안보위협론' 을 내세우며 중국 공격에 가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15일자는 중국 시안 (西安)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20기 이상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미 중앙정보국 (CIA) 은 15일 이러한 여론을 의식, 핵무기 기술의 유출논란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도 "이번 사건을 중국 朱총리의 다음달 방미 때 주요 의제로 다루겠다" 고 밝혔다.

양국간 공방전이 어디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로스 알라모스의 일부 과학자들이 미연방수사국 (FBI) 조사에서 당국의 허락없이 중국과학자들과 접촉했다고 털어놨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어 양국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한편 핵무기 유출 의혹을 처음 폭로했던 뉴욕타임스는 FBI의 요청으로 관련기사를 하루 늦게 보도한 사실이 밝혀졌다.

조지프 렐리벨드 NYT발행인은 당초 기사를 지난 5일 게재할 예정이었으나 FBI의 요청으로 하룻동안 보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공개했다.

당시 FBI는 5일 스파이 혐의를 받는 리원허를 신문할 예정이었는데 NYT기사에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반응 등 리원허가 모르고 있던 정보가 담겨 있어 보도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이 이같은 정부의 주문을 수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미국내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는 지적이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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