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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을 지키자] 1. 급증하는 알코올성 간 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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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간은 행복지수와 관계가 있다. 조기 퇴직, 이혼율 증가, 상대적인 박탈감 등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간 질환자는 늘어난다. 40대 이후 남성의 간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여성의 무려 9배다. B형 바이러스성 간염은 감소하고 있지만 알코올성 간 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탓이다. 스트레스 사회에서 당신의 간을 지켜주기 위한 시리즈를 3회 연재한다.

간은 인체에서 가장 듬직한 기관이다. 1.5㎏이나 되는 묵직한 무게도 그렇지만 웬만한 손상에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24시간 쉼 없이 일할 만큼 헌신적이다. 하지만 간이 혹사 당하는 것은 이런 충직성 때문이기도 하다. 과음.과식.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도 증상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 병이 악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러시아와 1, 2위를 다투는 '음주공화국'. 그만큼 알코올성 간 질환자도 급속히 늘고 있다.

경희의료원 소화기내과 이정일 교수가 지난 15년 동안 간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알코올성 간 질환자의 비중은 1986~90년 6.5%에서 91~95년 10.3%, 96~2000년 15.3%로 늘어났고, 2005년까지 20%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 교수는 "B형 바이러스에 의한 간질환 발생은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지는 반면 술에 의한 간손상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국민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의 10%는 위에서, 나머지는 소장에서 흡수돼 간에서 대사과정을 거친다. 알코올 분해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한 뒤 다시 아세트산(초산)을 거쳐 이산화탄소와 물로 배출된다. 간 손상의 주범은 바로 알코올의 중간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다.

간을 구성하는 간세포는 대략 3000억개. 간세포는 세포막으로 연결돼 간세포판을 이루고, 이것이 모여 작은 단위의 소엽이 된다. 이 간소엽에는 혈관.림프관.담관이 거미줄처럼 분포돼 있다. 마치 아파트의 각 동이 모여 단지가 되고, 단지 사이에 작은 길이 만들진 것과 같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직접 세포막이나 세포 내 단백질을 변성시킨다. 또 단백질과 결합해 면역반응과 염증반응을 유도하고 콜라겐 합성을 증가시켜 간의 섬유화를 촉진한다. 술에 의한 간경변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에다 영양 결핍까지 겹치면 세포재생이 늦어져 간질환이 빠르게 악화한다.

간의 역할은 다양하다.

첫째는 에너지 은행 역할. 사용하고 남은 포도당과 같은 에너지원을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적절히 공급한다.

둘째는 해독 기능. 몸에 들어온 각종 약물이나 유해물질을 분해해 체외로 배출한다.

셋째는 화학합성 공장으로서의 역할이다. 단백질을 이용해 담즙이나 각종 효소를 만들어 생명유지를 도와준다.

넷째는 때에 따라 혈액저장고가 된다. 간에는 전체 혈액량의 10%에 해당하는 450㎖ 정도의 혈액이 들어 있다. 남는 것은 비축하고,부족할 때는 공급한다.

다섯째는 인체의 방어선 구실도 한다. 대장에서 간으로 유입되는 세균들은 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걸러진다. 이를 막는 것이 쿠퍼세포다. 식균작용을 통해 빠져나가는 세균은 1%도 안 된다. 따라서 간을 잃는다는 것은 건강의 절반을 잃는 것과 같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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