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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지식 곳곳 '비과학적'…교과서 내용수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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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 말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 정답이 잘못된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자연계 수리탐구영역Ⅱ에 출제된 분자의 분산력 (分散力) 문제가 그것. 추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친 결과 당초 정답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제가 잘못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일부 고교의 화학교사.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이들은 "화학교과서를 근거로 하면 (출제위원들이 정해놓은) 정답은 잘못된 것" 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분산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일부 화학교과서가 잘못된 답을 고를 수 있도록 서술된 까닭이다.

교육부의 화학교과서 편찬관계자는 "11종의 고교 화학교과서를 검토한 2종에서 이런 잘못이 발견됐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약 절반 가량이 분산력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 이라고 말했다. 과학교과서의 특징은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적다는 점.

인문사회계통 교과서와 달리 과학교과서는 엄밀성을 더 요구한다. 국내 초.중등 과학교과서의 경우 전문가들의 잠정검토에서 적지않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그 내용이나 편찬방식을 변경하는데 심도있는 논의가 요구된다.

과학교과서의 대표적 오류 중 하나는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 한 예로 10여 종이 넘는 고교 물리교과서에는 한결같이 '빛을 파동으로 보면 광전효과에 대한 설명을 불가능하다' 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10여 년 전에나 들어맞는 내용.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안경원 (安敬元) 교수는 "광전효과는 빛을 입자로 보면 설명이 쉬워지는 것일 뿐 파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정설" 이라고 말했다.

단지 파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고교생 수준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뿐이라는 것.

한국교원대 물리교육과 김중복 (金重福) 교수는 "물리교과서를 보면 광전효과처럼 틀린 내용을 단정적으로 기술한 부분이 적지 않다" 며 "고등학교 수준에서 설명이 어렵다면 자세히 기술하지 않더라도 단정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고 말했다.

정확한 사실을 모른 채 '얼버무리는' 식으로 기술된 대목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실험관찰 과목은 ' (동물들이) 자연에 대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미세한 진동이나 소음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며 동물들의 지진 예지 (豫知) 능력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바르지 못한 서술. 한국교원대 박시룡 (朴是龍) 교수는 "동물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진 발생시 지표면의 압력변화에 따른 대기중의 에어로졸 변화를 동물이 감지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잘못된 개념을 갖도록 꾸며진 대목도 있다. 고교 물리교과서 중 상당수는 그림을 통해 편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 설명이나 그림을 생략, 편광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 고교 화학교과서 역시 '어는점 내림' 을 3가지의 다른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 학생들이 이에 대해 바른 개념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중 두가지 그래프는 아예 틀린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이억균 (李億均) 교수는 "우리 과학교과서의 경우 너무 많은 부분을 교조적으로 심도있게 다루려다 보니 각종 문제가 빚어지는 것 같다" 며 "과학교과서는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창의성을 살릴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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