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 혼자 남겨진 지킬 박사가 자신의 고뇌를 토로하는 노래 ‘더 웨이 백(the way back)’을 부를 때, 브래드 리틀의 입은 노래와 따로 놀았다. 가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입만 벙긋벙긋하는가 싶더니, 클라이맥스 부분에선 아예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한 ‘립싱크’였다.
제작사 측의 해명은 이렇다. “브래드 리틀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1막이 끝나고는 도저히 무대에 설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본인이 의욕을 보였고, 그래서 가장 어려운 노래 한 곡만 커버(원래 계획된 출연자가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준비하는 예비 배우)가 무대 뒤에서 부르고, 나머지는 원래대로 브래드 리틀이 소화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실제 뮤지컬에서 재현시킨,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해외에선 장기 공연을 하는 탓에 커버 배우가 무대에 서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한달 미만의 짧은 공연 일정과 특급 스타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한 관객의 정서상, 무리해서라도 스타를 등장시켜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제작사의 눈속임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다. 조용신 컬럼니스트는 “해외에서 수백편의 뮤지컬을 봤지만 ‘립싱크’ 뮤지컬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원종원 평론가는 “쉬쉬하고 넘어가기 보다, 당일 커튼 콜때 솔직히 사과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제작사는 결국 2일 공연에선 브래드 리틀 대신 무대 뒤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커버 배우 헤이든 티로 교체해 공연했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