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소화제 먹듯' 남용…불치환자 늘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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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말 서울 S병원에 입원한 K씨는 폐렴.뇌수막염 등의 증세를 보여 폐렴구균에 감염된 것으로 진단됐다.

이 병은 폐렴구균의 특효약인 페니실린 주사로 2주 정도면 완치가 가능하나 K씨는 항생제를 남용해 페니실린 약효가 전혀 없어 3주만에 숨지고 말았다.

또 지난 한햇동안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황색 포도상구균.장구균.폐렴구균 등을 죽이는 마지막 항생제로 알려진 '반코마이신' 으로도 치료가 안되는 장구균 감염 환자가 72명이나 발생, 의료진을 놀라게 했다.

이 병원에서 반코마이신이 안듣는 장구균 환자는 95년만 해도 1명에 불과했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김준명 (金俊明) 교수는 "의약분업이 제대로 안돼 항생제가 무분별하게 팔리고 병원에서도 항생제를 많이 써 항생제가 우리 국민에게 잘 듣지 않게 됐다" 고 말했다.

이처럼 일반인이 의사의 진단.처방없이 항생제.스테로이드제.습관성 의약품 등 전문의약품을 약국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현행 의약품 판매관행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항생제의 '약발' 이 잘 듣지 않는 대표적 국가가 됐다.

세계보건기구 (WHO) 는 97년 기준으로 서태평양지역 12개 국가에서 폐렴구균 (폐렴.뇌막염 등의 원인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84%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1일 밝혔다.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미국.영국.프랑스는 폐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이 평균 12%, 서구에서 항생제 내성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헝가리는 59%, 스페인은 44%다.

또 서태평양지역 15개국 가운데 임균 (淋菌.임질의 원인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은 한국이 91%로 필리핀 (95%)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일본은 4%였다.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스스로 항생제에 대항해 생존능력을 갖게된 상태로 페니실린 내성률 84%란 1백마리의 세균에 페니실린을 투여할 경우 84마리의 세균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송재훈 (宋在焄) 교수는 "항생제 내성문제를 방치할 경우 항생제로 치료불가능한 '슈퍼 박테리아' 등의 출현을 부를 수 있다" 며 "의약품 오.남용 방지대책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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