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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준비한 의약분업 정치권 입김에 물거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민연금.의약분업 등 국민 실생활과 직접 관련된 정부 주요 정책들이 정치권과 이익단체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의약분업 실시 시기를 오는 7월로 못박고 지난 18일 당정회의에서도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불과 1주일 만인 25일 국민회의가 의약분업을 1년 연기할 방침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는 대량 민원을 부른 국민연금 확대 실시 파동으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 여권이 의사협회.약사회 등 관련 단체의 불만 표출로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 뻔한 의약분업 실시 시기를 늦춰 '소나기' 를 일단 피하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약분업 연기 방침이 전해지자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예정대로 7월부터 의약분업을 실시하라" 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25일 성명을 내고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중대한 보건의료 개혁이 정부의 직무태만과 업계 로비에 의해 또 다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고 비난했다.

경실련도 "의약분업은 의약품 남용 문제와 의약계 비리를 푸는 열쇠인 만큼 시행 연기는 국민건강을 뒷전에 둔 처사" 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5년간의 준비로 시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의약품 분류 (일반.전문) 완료, 의보약가와 의보수가 조정, 약 유통개혁 방안 등을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의약분업은 의사의 진단.처방없이 손쉽게 약국에서 항생제.전문의약품 등을 살 수 있어 의약품이 오.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 (의사) 과 조제 (약사) 를 분리하는 제도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94년 한.약분쟁 과정에서 개정된 약사법에 이 제도를 올해 7월까지 시행키로 명시, 5년간 유예기간을 주었고 지난해 8월 의사협회.약사회.병원협회 등 의약분업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한 4차 의약분업추진협의회에서 합의까지 도출했었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두 단체는 IMF 한파와 의약품 분류.의료전달체계.의약품 유통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최근 의약분업 1년 실시 연기를 국회에 청원했다.

두 단체가 의약분업 원칙엔 찬성한다면서도 이같이 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의원급과 소형 약국의 수익감소에 따른 회원들의 반발 등 속사정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익단체의 반발로 지난해 말 통과가 예상됐던 약사법.의료법 개정이 보류된데 이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위원 16명 중 8명이 의사.약사.제약업체 출신인 탓인듯 이들 대부분은 의약분업 반대.연기를 바라는 이익단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국민연금도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주문에 따라 신고권장소득 80% 이하 소득신고자에 대한 직권결정 방침이 철회되고 연금제도 거부자와 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강제가입.징수도 대폭 완화되는 등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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