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이상기류 어떻게 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평생 친구라는 엄마와 딸. 그래서 아들만 둔 엄마들은 흔히 '딸 하나는 있어야하는데' 라는 인사말을 듣게된다. 그러나 엄마와 딸이 항상 좋기만 할까. "친정어머니하고 저하고는 너무나 다른 사람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합의점을 찾을 길이 없어 그냥 포기하고 삽니다. 형식적인 모녀 관계만 유지하는 셈이죠. "

주부 김지현 (35.경기도 안산시 본오동) 씨의 친정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하고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 지금도 김씨의 육아방법이 잘못 됐다며 사사건건 나무라고 당신의 방식만을 강요한다. 김씨는 홀어머니가 집 가까이 살고 계시지만 함께 살 생각은 없다.

엄마의 강한 성격과 그것을 못 견디는 딸의 갈등. 서로 잘하려해도 결국은 마음이 맞지않아 좀처럼 서로 편해지지않는다.

그런가하면 '보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를 바라는 딸이 엄마에게 섭섭함을 느껴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경우도 있다.

"친정어머니가 한번도 산간을 해주시지 않았어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온 적이 없었어요. 제게 엄마는 푸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주부 L씨와 같은 이유로 친정 어머니에게 '섭섭함' 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않다.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모성 이데올로기의 수용과 거부에 관한 연구(95년)' 로 석사학위를 받았던 이지혜 (李智慧.현 한국성폭력상담소 연구원) 씨는 "많은 딸들이 엄마를 절대 '모성' 의 기준에 근거해 판단한다" 고 전한다.

즉 엄마는 나에게 희생적이어야 하고, 나를 불편하지 않게 해주어야 하며, 나에게 전적으로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러한 기대치가 어긋날 때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적인 타입의 어머니에게 딸들은 만족할까. "친정에 갈 때마다 화가 납니다.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일하고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 엄마를 보면 화가 나고 결국 엄마와 싸우고 오게 되요 (주부 K씨) ."

"엄마도 좀 더 당당해지셨으면 좋겠어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요구하고, 주장도 하시고요. 늘 위축되고 작아보이는 엄마가 안됐으면서도 짜증이 나요 (주부 S씨) ." 딸들은 엄마가 '모성' 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불평하지만 한편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이상적 여성' 의 지렛대로 비판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보인다.

이는 어머니 쪽도 마찬가지. 허인숙 (許仁淑.63.서울송파구오륜동) 씨는 자신과 함께 사는 딸이 파출부처럼 자신을 부리는 것 같아 섭섭하지만 '참아버린다'.

이밖에도 ▶남녀를 심하게 차별하거나 ▶청소년기에 폭언.폭행 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남겼을 때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 받으려는 경우에는 모녀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또 일부 미성숙한 엄마는 딸을 경쟁상대로 여겨 갈등을 빚기도 한다는 것.

이런 모녀 갈등을 서로 진솔한 마음으로 털어 놓아 갈등을 넘어설 수도 있다. 권순자 (54.서울 강남구 청담동) 씨는 행여 딸에게 부담을 줄까 최근 결혼한 딸네집 출입을 자제했다.

그러나 함께 음악회를 다녀온 딸이 차를 나누면서 "엄마가 나에게 보다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며 그간 섭섭함을 털어 놓자 입장을 바꾸게 됐고 딸과 '이상기류' 도 자연 해소됐다.

이은영 (38.서울 서초구 잠원동) 씨는 온갖 어려운 일은 딸과 의논하고 딸에게 맡기면서도 정작 '고맙다' 는 말없이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친정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갈등을 해결한 경우. 상대방의 말에 감정적이 되기 쉬운 대화보다 편지가 훨씬 솔직하고 공감도 클 것이라는 그의 예상이 적중, 딸의 섭섭함을 이해한 어머니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모녀관계는 모자관계와는 또 다르다. 서로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고 믿고있고 함께 정서적 문제를 나누려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모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 엄마' '내 딸' 만이 아닌 독립된 한 여성으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서로 상처주는 것 이면에 감추어진 사랑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사사건건 간섭하고 비난하는게 딸을 돕고 싶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길 원해서 그러셨다는 것을 결혼하고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는 정인선 (45) 주부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경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