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총선 인기책'은 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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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로 국민정부가 탄생한 지 만1년이 된다.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나 아직 개혁이 진행중이기에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년의 기간만을 놓고 본다면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으나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인색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정치적 면에서 볼 때 여소야대의 출발점과 공동정권이라는 숙명 때문에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으나 여야의 대결정책으로 정치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나라당이 총리인준에서부터 대결자세를 보여 정국이 불안정해지자 여당이 야당의원 빼오기로 몸집을 불린 것은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강구해 보았는지, 아니면 단지 야당을 '충성스러운 반대당' 으로 취급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야당의 책임이 크기는 하지만…. 국민은 국회.정당.선거 개혁을 열망했고 정부도 정치개혁을 공약했으나 국회에서의 강경대립으로 정치개혁특위조차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선거를 도입하겠다는 여권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과연 내년 총선때까지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 선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기내 선거개혁은 물건너 간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또 공동정권의 운영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실험인 공동정권은 권력을 분점하고 독재를 예방할 수 있는 면에서 일단 성공했다고 하겠다.

급진개혁세력과 보수세력 간의 연정 (聯政) 으로 급격한 경제개혁이나 북방정책변경이 억제될 수 있어서 국민의 불안을 덜어 준 것은 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운영에 있어서는 국무회의의 기능이 옳게 발휘되지 않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간의 독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듯 해 과거의 청와대 눈치 살피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공동정권 출발시의 약속인 내각제개헌문제가 불투명해짐으로써 공동정권의 장래에 대한 우려를 씻어주지 못하고 있다.

두 당이 공동협의를 통해 연내개헌이냐, 연기냐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는 것이 정치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행정은 있었으나 정치는 없었다는 평도 있으니 정당정치의 발전을 기함으로써 내년으로 닥쳐온 국회의원총선이 정당본위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환란 (換亂) 을 극복해 가용외환보유액을 늘리고 순외채를 감소시킨 공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IMF협정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국제신인도를 상당히 회복한 것도 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국내자산의 해외매각이나 재정적자에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해야 하겠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초기에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안정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문제와 실직자의 공공근로사업.국민연금확

대.의료보험통합 등이 문제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실업자의 양산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보다 유효적절하게 능력을 개발시킬 수 없었는지 의문시된다.

그동안 교육개혁에 있어 교사의 정년단축.전교조 인정.학부모의 학교운영참여 등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국공립대학의 구조조정, 대학원대학.전문대학원제도의 도입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공기업 조정, 새 정부조직개편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교육개혁의 늑장은 학문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학정원의 과다인가로 인한 대졸실업자의 양산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며 학력 인플레현상도 시정해야 할 것이다.

여성정책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여성고용평등법개정 등으로 여성의 지위를 높인 것은 잘 했으나 구조조정의 결과 실질적으로 여성실업자만 양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여성할당제를 도입한다고 하니 그 실현여부가 주목된다.

국민회의는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사법개혁은 후퇴하는 감을 주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이 동결됐고 판.검사정원의 획기적 증가 등이 외면되고 있으며 말썽 많았던 전관예우금지 등만 입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약사업이던 인권위원회의 설치도 지연되고 있으며 방송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이밖에도 국민정부 1년에 대한 공과를 나열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한숨에 다 할 수는 없을 것이요, 방향만 옳게 설정됐으면 꾸준히 실천하면 될 것이다.

1년이란 세월은 영겁에 비하면 짧으나 임기 5년에 비하면 그리 짧은 시기가 아니다.

앞으로는 내년 총선을 위한 인기정책을 집행할 것이 아니라 백년대계를 세워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밝히는 정책을 성실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김철수 탐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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