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 마음 아닌 몸이 앓는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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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한 천재화가 고흐 탓일까. 정신분열병만큼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질환도 드물다.

11일부터 4일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린 아.태신경과학회에선 '정신분열병, 이젠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때' 를 주제로 전문가들의 강연이 있었다. 정신분열병에 대한 오해와 최신 치료경향에 대해 알아본다.

가장 대표적 오해는 정신분열병을 마음의 병으로 알고 있는 것. 그러나 아일랜드 로얄칼리지오브서전대 임상약물학과 존 와딩턴교수는 "정신분열병은 뇌라고 하는 장기에 이상이 생긴 몸의 질환" 이라고 못박았다.

정신분열병도 감기나 소화불량처럼 몸에 생긴 질환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 증거는 많다.

정신분열병 환자는 MRI (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에서 실제 뇌의 구조이상이 관찰되며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도 정상인보다 많다. 원인에 대한 설명도 달라졌다. 과거 엄격하고 지배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거나 가족간의 갈등 등 정신적 요인을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최근 유전자의 잘못 등 물질적 요인을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와딩턴교수는 "부모 중 한 명이 정신분열병이면 자녀가 정신분열병에 걸릴 확률이 10%에 이르며 쌍둥이 중 한 명이 환자일 경우 다른 형제가 정신분열병에 걸릴 확률은 35~58%에 이른다" 고 설명했다.

정신분열병이 드문 질환이란 것도 오해 중 하나. 캐나다 맥마스터대 정신과 배리 존스교수는 "국가와 인종에 상관없이 현대인의 1백 명 중 1명은 일생에 한 번 이상 환청.망상 등 정신분열병 증상을 겪는다" 고 강조했다.

부끄러운 질환으로 생각해 숨기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 환자는 매우 많다는 것. 그래서 치료에 드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존스교수는 "미국립정신의학연구소와 하버드대의 조사결과 미국에서만 매년 6백50억달러가 정신분열병 치료에 쓰여 미국인의 사망원인 1위질환인 심장병보다 돈이 더 드는 셈" 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오해는 정신분열병을 불치병으로 여기는 것. 그러나 최근 자이프렉사.리스페달.클로자핀 등 새로운 신약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치료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했다.

뇌 속에서 도파민.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의 과잉작용을 차단하는 것이 이들의 치료원리다. 지금까지 약물치료의 문제점은 할로페리돌 등 기존 약물들이 환각.망상.적개심과 같은 증상치료엔 효과적이었지만 감정결핍.흥미 부족.언어장애.사회적 위축과 같은 증상을 개선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이들 약을 오래 복용하다보면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행동이 굼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기존 약물치료는 헛 것만 보이지 않게 할 뿐 환자들은 하루 종일 멍한 상태에서 약물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이른바 절반의 치료에 불과했다는 것. 그러나 자이프렉사 등 신약은 이러한 부작용을 현저히 줄이고 감정결핍.흥미 부족 등의 증상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

독일 함부르크대 정신과 디터 나버교수는 "신약의 등장으로 단순한 증상억제에서 직업적.사회적 재활까지 치료영역이 확대됐다" 고 강조했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지난날 화가 고흐.무용가 니진스키.소설가 조이스.재즈음악가 하렐처럼 대부분 천재적 영감을 지닌 예술가로서만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젠 공인회계사.건축설계사.법률가처럼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인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게 됐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서울중앙병원 정신과 김창윤 (金昌潤) 교수는 "신약은 기존 약물보다 서너 배 이상 치료비가 비싼데다 환자 10명 중 한 두 명 꼴로 나타나는 이른바 난치성 정신분열병엔 아직도 효과가 분명치 않다" 고 설명했다.

자이프렉사 등 신약은 최근 국내에서도 정신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다.

페낭 =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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