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노동계 올 봄이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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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봄이 불안하다.

연초부터 조심스레 얘기되던 이른바 '4월 위기설' 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선언에 따라 노동계와 정부.재계가 '충돌 코스를 달리는 게 아니냐' 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나라 안팎의 여러 악재 (惡材) 들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아직 허약한 우리 경제가 다시 큰 고비를 맞으리라는 것이 위기설의 요지다.

▶기업.공공기관의 추가 구조조정에 따른 최악의 실업사태 ▶노동계의 대규모 투쟁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지역감정의 악화 등이 위기의 요인들이다.

"여기에 세계 금융불안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친다면 빅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는 게 한국 노동경제학회장인 김재원 (경제학) 한양대 교수등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IMF 극복' 이란 명분에 밀려 억제돼온 노사 양쪽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지금, 낙관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 대한 안이한 낙관론과 섣부르게 희망적인 지표들이 화근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는 아직도 캄캄한 터널 속에 있다. 1년전의 고통분담 정신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쓰러진다" 는 경고다.

위기의 뇌관은 노동계가 쥐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는 결연하다.

민주노총은 24일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이제 들러리는 서지 않겠다" 는 것이다.

일방적 정리해고의 중단과 최소한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춘투 (春鬪)' 를 준비 중이다.

3월에 서울지하철.한국통신 등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4월에 총파업을 강행할 계획이다.

한국노총도 대기업 빅딜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노조측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한 노사정위를 탈퇴한다는 입장이다.

"고용안정과 지난해에 깎인 임금의 원상회복이 안되면 4월부터 쟁의절차에 돌입하겠다" (노진귀 정책본부장) 고 한다.

두 노총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올 봄 첫 연대투쟁도 벌일 계획이다.

여기에 대학운동권 (한총련) 도 가세할 태세다.

"올 대졸 미취업자가 21만명이다. 실업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는 인식 아래 3월 개강과 함께 노학 (勞學) 연대투쟁을 벌이겠다고 예고한다.

재계는 재계대로 단호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 의 한 간부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노동계는 추가 구조조정으로 3월말께 실직자가 2백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그럴 경우 분위기는 폭발적이 될 것" 이라고 한국노동연구원 선한승 연구조정실장은 우려한다.

정부는 노동계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구체적 대책은 없다.

노사정위의 기능마저 유명무실해질 경우 1년 남짓 완충역을 해온 정부의 조정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게다가 내년 4월의 16대 총선에 대비한 정계개편이 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복합상황이 낳을 파장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어렵사리 '투자적격' 판정을 되받아냈지만 국내상황이 불안해지면 신인도가 재추락할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 , "가뜩이나 무역환경이 악화되는 판국에 분규까지 터지면 큰 타격이 될 것이다. " (한국무역협회 관계자) 김재원 교수는 "임금삭감을 통한 고용유지, 빅딜 때 고용승계 확약 등의 단기적 처방이 필요하다" 며 "정부는 정책을 투명하게 하고 관련 통계.전망 등에도 솔직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대외적인 변수들도 먹구름이다.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브라질 환란이 중남미로 확산되고 미국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세계금융공황의 가능성이 있다' 고 경고했다.

기획취재팀 김석현.신동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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