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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공직윤리-한.미간 격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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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짧은 미국 방문길에 읽어 본 한국신문에서는 연일 검찰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정치적 예속과 부패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채 반세기를 허송해 온 그간의 부끄러운 검찰사가 미국의 법 현실과 대비되면서 법률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미국의 모든 뉴스는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탄핵청문회로 장식된다.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대한 의회의 최후 견제수단이 바로 이 탄핵절차다.

그동안 한국의 집권세력은 언제나 특별검사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왔

다.

정치적 중립이 의심스럽다거나,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식의 주장을 해 왔다.

그러나 현지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현직 대통령의 사소한 스캔들과 경미한 사법방해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 위에 법이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재직중 범죄를 한 번도 수사해 보지 못한 검찰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미국 특별검사의 정치적 편파성 운운하는 것은 차라리 가로소운 일이다.

더 이상 정치검찰의 오명을 짊어질 수 없다는 소장검사들의 절박한 목소리들은 누구도 법 앞에 예외를 둘 수 없으며 어떤 성역 (聖域) 도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염원과 함께 만나야 한다.

그동안 부패는 사실 우리 사회의 문화풍토였다.

선물과 뇌물의 구분이 모호한 사회, 접대문화가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검찰과 법원만 깨끗하기를 바란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엄정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조직이라면 잘못된 관행에 자신을 내맡긴 무사려 (無思慮)가 면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선진국일수록 철저하고 구체적인 공직자 윤리규정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모든 공직자는 한 번에 20달러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수 없다.

선물도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경우에만 허용된다.

어떤 명목으로든 한 사람으로부터 연 (年) 50달러 이상을 받는 것은 금지된다.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단호하게 처벌된다.

공직자의 어떤 수입도 세금을 면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공직자의 청렴성을 보장하기 위한 세세한 윤리장전 (章典) 과 행위준칙을 정하고, 교육과 함께 조사와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 (前官禮遇) 로 상징되는 현직과 퇴직의 유착 (癒着) 관계 역시 판.검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부처 고위직을 그만두면 대기업 간부로 가고, 교육부처 간부는 사립대 경영진에 편입된다.

이같은 전관예우는 전문성에 대한 우대라기보다는 대 정부 로비의 창구 (窓口) 이자 지연된 뇌물의 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다.

그같은 전관예우는 공직자윤리법상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여태껏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판.검사들은 형사수임 사건에 대한 전관예우의 특혜를 금하자는 규정의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전관예우 금지조항은 미국에서는 훨씬 엄격하고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다.

공직에서 얻은 정보와 인맥상의 이점을 사후에 사적 (私的) 목적에 쓸 수 없도록 퇴직 후 관련 직종에의 취업금지 규정은 1년부터 5년까지에 걸친다.

93년도 이후 임명된 고위직 공무원들은 취임시 선서를 통해 현직 경력을 추후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후 감독을 철저히 한다.

현직과 퇴직간의 부정한 유착을 통해 형성되는 '철밥통 공동체' 는 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아직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청렴성의 과제 앞에 주춤거리고 있는데 반해 미국 검찰은 민생검찰로의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성.아동.가정 폭력을 막기 위한 지속적인 실천이 한 예다.

미연방 법무부는 여성폭력국을 신설해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을 예방.교육.처벌하기 위한 종합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다.

뉴욕시 검찰은 20여년 전부터 성폭력특별단을 구성해 가해자 (加害者)에게 유리했던 법적 관행과 사회적 태도를 피해자 (被害者) 중심의 법체계로 바꾸는데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검찰.의사.지역사회 조직이 상시 (常時) 접촉한다.

시민생활에서 출발해 시민과 함께 하는 검찰상 (像) 이 돋보이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이 정치적 영향과 부패의 어두운 그늘을 제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진사회로 가는 청신호다.

아직도 조직이기주의적 해결책으로 위기를 회피하려 한다면 더 큰 비극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단번에 혁파 (革罷) 해 공정 (公正) 검찰.청렴 (淸廉) 검찰.민생 (民生) 검찰의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한인섭 서울대교수.형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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