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생생한 과학'에 목마른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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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월 국내 과학의 메카라는 대덕단지에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사건' 이 하나 있었다. 연구단지 설립 20년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의 탐방 물결이 이어진 것.

특히 기계연구원과 항공우주연구소에는 20여일 남짓한 기간 동안 각각 1천6백 명 정도가 다녀가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했다. 예년 이맘때면 수십 명에서 2백~3백 명 정도가 고작이던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 단지 내 자원연구소나 에너지기술연구소 등도 비슷했다.

심지어 자기부상열차는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난달 29일로 공개를 마감하고 휴지기를 거쳐 2월 하순경 다시 공개에 들어가기로 했을 정도. 탐방객이 이처럼 폭증한 것은 언론보도 (본지 1월 4일자 24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 그러나 연구소 종사자들은 물론 연구소 탐방을 소개한 기자 역시 이처럼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대덕단지의 그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 하루 최고 6백 명이 몰렸다는 자기부상열차나 올 가을 발사예정인 국내 최초의 다목적 실용위성이 호기심을 큰 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선로 위를 떠서 다니는 '소음 없는 열차' 나 우주로 올라가는 위성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호기심을 만족시켰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실용위성은 3월까지 밖에 볼 수 없어 더욱 방문객이 몰렸음 직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서울대 물리교육학과 박승재 교수는 "닫힌 교실에서 교과서.참고서만을 통해서 익히는 과학교육에 우리 학생들은 넌덜머리가 난 상태다.

대덕단지 견학이 실제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연구소를 찾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을 것" 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의 과학교육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과학교육의 본령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최근 과기부 주관의 한 조사에서도 세계 42개국 가운데 과학교육 충실도 등은 하위권이었다.

21세기는 누구나가 말하는 과학기술의 시대. 정쟁이 판치고, 법조가 혼란스런 와중에도 꼬리를 무는 어린 학생들의 과학 탐방 물결에서 미래 한국의 희망을 보았다면 기자만의 지나친 낙관일까.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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