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아리아 사회상황과 맞물려 이색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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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울게 하소서 잔인한 내 운명이여/자유를 그리며 탄식하도록/슬픔이 내 고뇌의 실가지들을 불쌍히 여겨 부러뜨리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여주인공 알미레나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scia ch' io pianga)가 요즘 팝차트 정상까지 오르는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 노래는 수록음반 5종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이중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의 새음반 '에덴' (EMI) 은 발매 1주일만에 3만5천장이 팔려나가면서 7일 현재 각 음반매장의 클래식 차트 1위는 물론 팝차트 1위 (타워레코드 종로점) 로 껑충 뛰어 올랐다.

또 소프라노 신영옥의 'Dream (꿈)' 이 타워레코드 클래식 차트 8위, 카운터테너 요시카스 메라의 '로망스' (신나라)가 교보문고 핫트랙 차트 6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교보문고 차트 9위에 올랐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카로 미오 벤' (에라토) 도 3만장이 팔려나갔다.

또 소프라노 산드리네 피아우가 녹음한 '헨델 아리아와 듀엣' (오퍼스111) 도 베스트셀러다. 95년 영화 '파리넬리' 로 유명해진 이 노래의 갑작스런 인기 배경은 우울한 시대 상황과 노래의 분위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인기TV드라마 등에 삽입되면서 대중적인 반응이 증폭되었다.

이 곡은 지난 해 실직 가장을 위한 기획음반 '아빠!힘내세요' (필립스)에 첫 곡으로 수록됐다. 당시 음반 기획 과정 중에서 편집음반을 기피하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도 어려운 국내 사정을 감안, 폴리그램 코리아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후문이다.

체념과 고뇌 속에서도 한줄기 구원의 희망을 노래하는 내용, 장조의 단순한 선율임에도 느린 템포의 3박자의 곡중 2박에 액센트가 주어지는 사라방드 리듬이 마치 한숨을 쉬는 듯한 분위기로 애절함을 더해준다.

이같은 분위기로 지난해 초 영화 '아름다운 청춘' 에 이어 최근 MBC주말연속극 '사랑과 성공' 에 삽입곡으로 등장했고 CF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음악요법 중에는 '우울한 사람이 자기 상태와 동일한 슬픈 분위기의 음악을 들으면 외부 상황에 교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는 '동질의 원리' 가 있다.환자 (감상자) 의 심리적.생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음악을 선택해 들려주는 방법이다. '울게 하소서' 에서 '슬픔이 고뇌의 실가지를 부러뜨리네' 라는 가사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KBS - 1FM의 성악곡 전문 프로그램인 '노래의 날개위에' (오후4~5시) 를 맡고 있는 윤문희 PD는 "최근 들어 이곡의 엽서 신청이 부쩍 늘고 있다" 며 "성악곡에서 하루에 2건 이상 신청곡이 접수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 이라고 말했다.

헨델의 아리아 중 최고 히트곡인 '울게 하소서' 는 원래 카스트라토 (거세된 남성 소프라노)가 불렀으나 지금은 소프라노.카운터테너가 즐겨 부른다.

오페라 '리날도' 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이 아리아만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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