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박쥐 소식에 '기쁨'보다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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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및 보존 야생 동식물 포유류 1호인 '붉은 박쥐' (일명 황금박쥐) 의 집단 서식지가 전남의 한 폐광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문가들은 '기쁨' 보다 '우려' 를 표하고 있다. 밀렵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몸길이 4.3~5.7㎝에 털이 오렌지색인 이 박쥐는 우리나라.일본.대만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만 서식하며 암놈과 수놈의 비율이 1대20~30인 희귀종이다.

환경파괴 등으로 급속히 수가 줄고 있는데다 포획하면 48시간 이내에 말라 죽어 인공번식도 불가능하다.

지난해 가을 한 방송사에서 '긴 날개 박쥐' 의 집단 서식 동굴을 방영한 직후 밀렵꾼이 2천여마리나 되는 박쥐를 '싹쓸이' 한 일이 일어났다. '열목어' 나 '금강초롱' 등도 역시 방송 직후에 수난을 당했다.

국립환경연구원 환경생물과 최병진 (31) 박사는 "동굴 위치는 절대로 알려져선 안된다" 며 "밀렵 목적이 아니라도 구경꾼들이 모여들면 동면중인 박쥐들이 무리하게 이동을 시도하다 전부 얼어죽을 것" 이라고 걱정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집단 서식' 역시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경남대 생물학과 손성원 (60) 교수는 "붉은 박쥐는 집단 서식하는 종이 아니기 때문에 한 동굴에서 80마리 이상 발견된 경우는 처음" 이라며 "생태 환경이 파괴되면서 마땅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한 곳에 모여든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손교수는 또 "방송에서 발견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더라도 밀렵꾼들은 귀신같이 찾아낸다" 며 "관계 당국에서 박쥐만 드나들 수 있도록 굴 입구를 봉쇄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모두 잡혀 죽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환경부 자연생태과 남병언 (34) 사무관은 "곧 실태 조사를 한 뒤 해당 시.군의 협조를 얻어 보호조치를 취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EBS는 '붉은 박쥐' 의 모습을 오는 4월 방영한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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