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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3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철규와 승희의 경우, 차마담의 그런 태도에 긴장이나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희극적인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녀의 눈물샘은 밤낮으로 줄줄 새는 공동세면장의 수도꼭지같이 헤픈 편이어서 눈물이 갖는 보편적 긴장감이나 전달력이 한계를 넘어서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눈물 흘릴 때의 차마담을 대하는 변씨의 태도였다. 차마담이 울음보를 터뜨리면 거의 때를 같이하여 변씨도 덩달아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석하는 철부지처럼 울듯 말듯 눈 가장자리를 질금거리면서 차마담을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배말자씨의 느닷없는 출현으로 둘 사이의 결집력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는 위기감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

철규와 승희가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걸핏하면 코를 맞대고 앉아 눈물을 짜내곤 하였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므로 변씨가 핏대를 곤두세우고 소매를 부르걷으며 코큰 소리를 질러댄다 하더라도 허세에 불과하였고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서려 있는 쇠잔한 그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철규 역시 서글퍼졌다. 차마담은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면전에서 변씨의 눈 가장자리에 질금거리는 눈물버캐를 훔쳐주면서도 자신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철규는 변씨의 그런 모습에서 초로의 인생이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연민과 쇠락의 깊이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맞장구를 치며 윤종갑이나 박봉환에 대한 보복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다독거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면인 민박집 여자를 시켜 닭을 잡게 하였다. 조용하게 가라앉았던 집안 분위기에 활력이 실리면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차마담의 눈물도 식어 갔다.

그러나 울었던 것이 후더침이 되어 딸꾹질은 여전했다. 그런데 닭백숙이 식탁 위로 나타나면서 차마담과 승희 사이에 예측 못했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것은 두 개뿐인 닭다리 때문이었다. 차마담은 두 개의 닭다리 모두를 변씨에게 먹이려 들었고, 승희는 철규의 몫으로 생각해서 접시를 그의 앞으로 얼른 디밀어 주었다.

그러나 염치없는 차마담은 접시를 다시 변씨 앞으로 냉큼 밀어 놓는 것이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하찮은 것에 배알이 틀리는 것이 또한 정리가 돈독한 사람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살풍경이었다.

차마담을 직설적으로 면박준 것은 참기 어려웠던 승희였다. "알고 보니 놀부심술이네. 한선생 입으로 닭다리 들어가면 어디가 덧나는 줄 알아요?" "우리 선장님 수척한 것 보세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잖아요. "

"뒷수습한답시고 동분서주하면서 끼니를 걸른 건 마찬가지예요. " "겉보기엔 멀쩡하신데 뭘 그러세요? 산이라도 들었다 놓겠네. " "그럼 눈동자라도 허옇게 치뜨고 수채구멍에 이마 박고 고꾸라져야 속 시원하시겠네. " 가시 돋친 수작을 한마디씩 주고받는 찰나, 변씨는 승희를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장마당 돌아치며 시래기국으로 배를 채워온 보람이 걸찍해진 승희 입담으로 나타나는구만. 구변이 그만하면, 명당자리 두고 노점상들과 대판 시비가 벌어져도 제 몫을 하겠어. " 좌석이 갑자기 어색해서 입을 다물고 있던 철규가 얼른 소주잔을 건네며 거들었다.

"명당자리쯤은 태호하고 나는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으면 해결이 되곤 했어요. " "좌판자리 때문에 벌어지는 시비를 해결하는 데는 봉환이도 제 몫을 했었는데…. "

"봉환이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윤종갑이와도 결별을 했고 묵호댁하고 관계도 깨끗하게 청산한 걸 보면 주문진 하직하고 떠난 건 틀림없는데, 어디로 갔는지 그건 알 수 없어. 돈푼깨나 있다는 놈들은 비행기 타고 LA로 날았겠지만 봉환이가 그럴 푼수는 못되겠으니 국내에 어디 있겠지. 지난해 마늘장사로 몇 장 옹골차게 챙긴 모양인데, 그걸로 딴 꿍심을 가진 게야. 어디서 또 계집아이 끼고 뒹굴고 있는 건지. 이 자식이 엉뚱하게 서울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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