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공모전 약속 저버린 화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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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11월 재개관한 강남구청담동 갤러리 시우터는 '터치' '유쾌한 장신구전' 등 3회의 기획전을 통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미술이 되어야 한다" 는 문제제기를 했던 화랑이다.

개관과 함께 실험성 강한 젊은 기획자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다는 취지로 제1회 큐레이팅 공모전을 열어 올초 13명의 입상자를 발표했다.

이중 프론티어상과 특별상 수상자 6명의 기획안은 저작권 협의 등을 거쳐 올해 안으로 갤러리 시우터에서 전시를 열어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큐레이팅 공모전이 현재 전면백지화될 상황에 놓였다. 경영진이 어려운 경영 여건 때문에 "입상자들에게 줄 상금과 전시비용을 비롯해 더이상의 지출은 곤란하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

'기획 화랑' 으로서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고 자평하던 큐레이터들은 이때문에 입상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모전은 일종의 약속이다. 시행주체인 화랑과 응모자 사이의 약속인 동시에 화랑과 일반관람객 간의 약속이기도 하다.

공모전 시행부터 심사.발표까지 모든 것을 매스컴을 통해 홍보했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가 화랑 업무의 본질인 이상 화랑에게 "상업성을 띠지 말라" 고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이미 시행된 공모전을 '없었던 일' 로 한다는 것은 분명 무책임한 행동이다. 대관화랑이 주조를 이루고 '기획 화랑' 을 표방하다 슬그머니 방향을 선회하거나 경제논리로 문을 닫은 화랑이 적지 않은 우리 현실에 대한 씁쓸함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말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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