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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어른들이여 반성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주택은 있으나 가정이 없고 식구는 있으나 가족이 없다' . 요즘 우리 가정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가정은 가족 서로간의 생존과 애정을 확인하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인간생활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정은 어떤가.

가족 전체의 발전과 조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각자를 위한 방편으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남매.자매라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정 (情) 은 없고 단지 구성원 관계로만 유지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롭게 형성된 사회적.문화적 원인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전통가정의 윤리가 파괴되고 개인의 성취주의와 편의주의.쾌락주의가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인 친딸 넷을 자신이 운영하는 다방의 종업원으로 일하게 하면서 윤락행위를 시키다 적발된 부모가 있었는가 하면 그런 부모의 지시를 주저없이 따르는 딸들이 있었다.

용돈을 벌겠다며 미성년자인 친누이와 의기투합해 윤락가를 찾은 오빠,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한 여고생 딸, 술취한 딸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당해오다 경찰에 고소한 어머니도 있었다.

급기야 재산상속을 위해 열두살 먹은 어린 이복 남동생을 누나들이 공모살해해 암매장한 사건도 발각됐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보며 가족의 해체를 예견하는 증거가 아닌지 전율한다.

혹자는 이런 걱정을 일시적 사회현상에 대한 기우 (杞憂) 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차라리 기우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자주 생기면 그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결국 이것이 가족윤리를 파괴하는 논리로 자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가족윤리를 뒤흔드는 논리가 들어서서는 결코 안되는 곳이다.

그것은 '인간' 붕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우선 가정에서 도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부모로서의 진지한 모습, 건전하고 합리적으로 세상에 참여하려는 어른으로서의 의식있는 삶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

지도층 인사나 고위 공직자에서부터 필부 (匹夫)에 이르는 아버지들 대부분이 시류 (時流) 를 핑계대며 단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나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자식들은 이런 부모나 어른을 우습게 볼 수밖에 없고 부모와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뒤가 켕기고 떳떳하지 못한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탈선이나 횡포에 당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시대의 문제와 해답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어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세상과 자식들을 향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근엄하면서도 사랑이 넘쳤던 우리의 부모님을 상기하며 그런 당당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런 반성과 회개 없이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대외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전반을 합리적으로 개혁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어른들이여. 우리 손을 우리 가슴에 얹고 냉정한 머리로 밤을 새워가며 자신부터 반성해 보자. 당장 오늘부터.

이상헌 한국 건전가정운동 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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