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벽 높은 한.일 방위협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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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보수진영의 일본인들은 일본이 정상적인 나라 (normal country)가 아니라고 자조 (自嘲) 한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인 나라 (abnormal country) 냐고 물으면 "일본은 노멀 컨트리가 아니다" 는 말을 반복한다.

어브노멀 컨트리라고 해버리면 일본은 정말 이상한 나라가 되어 국제사회의 '왕따'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면서 국제분쟁이나 자연재해를 지원하는 일에 물질적인 기여밖에 못하는 것이 일본이다.

북한이 일본열도 위로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일본에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는 자각이 일어나고, 그 서슬에 한.일방위협력의 기본틀을 만들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현실의 벽은 높다.

지난해 10월 마산에서는 서울의 신아시아질서연구소 (이사장 李相禹 서강대교수) 와 도쿄 (東京) 의 오카자키연구소 (소장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태국주재 대사) 의 공동주최로 한.일방위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두개의 실제상황을 가상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가졌다.

참가한 사람들은 전략과 안보전문가들이었다.

첫번째 시나리오 : 98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를 싣고 부산으로 항해중인 유조선이 제주도와 일본 사세보 (佐世保) 사이 공해상에서 폭발물에 부딪혀 침몰중. 북한 잠수함에 의한 어뢰공격인 것 같다.

한국은 일본에 구조팀 파견을 요청.

두번째 시나리오 : 99년 6월. 한국 해군이 한국 영해에서 포착된 북한 잠수함 4척을 추적중 1척만 격침. 나머지 3척은 공해를 넘어 일본 영해로 잠적. 한국정부는 북한 잠수함을 추격하는 한국 함정의 일본 영해 진입허가를 요청.

그러나 한국은 어느 경우에도 만족스러운 일본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했다.

유조선 침몰사건에서 일본은 한국을 지원하는 전쟁을 준비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 두려워 자위대의 대잠초계기 (對潛哨戒機) 활동만 한다.

사태가 훨씬 급박한 두번째 시나리오에서도 일본은 북한을 자극할 염려가 있다고 해 한국의 요청을 거절. 게임 도중에 북한이 대포동미사일과 노동미사일로 일본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가상정보가 들어온다.

북한의 미사일공격을 받으면 일본은 보복공격을 하기로 하지만 일본 항공자위대 전폭기들의 항속거리를 가지고는 북한 미사일기지를 폭격할 수 없다.

해상자위대의 순항미사일은 지상공격에는 효과가 없다.

결국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미사일을 지원받아 공격한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한국에 사전 통보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은 충격적이다.

실제상황이라도 이런 결론이 아닐까 싶다.

2005년에는 사정이 다를까. 지난 21일과 23일 도쿄와 하코네 (箱根)에서 마산 멤버들이 참석한 두개의 시뮬레이션 게임 결과를 보면 사정은 달라진 게 없다.

미얀마에서 자치를 요구해 반란을 일으켰던 소수민족과 중앙정부간에 유엔 중재로 휴전이 성립돼 한국은 휴전을 감시하고 복구를 지원할 보병부대와 공병대를 보내고 일본도 비전투부대를 보낸다.

두나라 정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협력은 없다.

대지진이 일어난 사할린에도 두나라 구조대가 가지만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해 8월 북한의 미사일발사 이후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공동으로 느낀다.

그러나 한.미.일 방위체제의 삼각형에서 한국과 일본의 변 (邊) 은 끊긴 상태로 남아 있다.

협력을 가로막는 높은 벽과 작은 걸림돌들은 어떤 것들인지 많은 토론과 시뮬레이션 게임과 문제점을 짚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카자키 히사히코 (岡崎久彦) 씨의 말대로 한국과 일본간에는 상식적인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협력의 첫걸음 같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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