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예술인들의 고백과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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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달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A모 교수가 불법 레슨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국내 정상급 클라리넷 연주자다.

관악 (管樂) 분야만큼은 음악원이 서울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데는 그의 역할도 컸다.

그는 대학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가 20여년 동안 브라운슈바이크시립대 교수로 있다가 '좋은 제자를 기르겠다' 는 일념으로 그곳 시향의 종신단원 자리까지 박차고 2년전 귀국했다.

그해에 그는 월 10여만원의 레슨비를 받고 학생을 가르쳤다.

이번에 그게 화근이 됐다.

이 일이 불거지자 음악계는 '안타깝다' 는 반응을 보였다.

한 피아니스트는 "진짜 구악 (舊惡) 들은 안잡히고 애꿎은 사람이 걸려들었다" 고 했다.

클래식 전문 서울예술기획의 박희정 사장은 A교수 건이 '예술의 블랙홀 현상' 의 한 예일 뿐이라고 말했다.

朴씨는 "아무리 외국에서 연주력을 잘 길러와도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옛 스승에게 불려가 그의 구미에 맞는 귀국독주회 프로그램을 짜는 게 우리의 현실" 이라고 했다.

A교수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험악한 현실에 '세련되게' 적응하지 못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기획취재 기사 '공연예술 흥행 빛좋은 개살구' (본지1월 15일자 1, 3면)가 나간 뒤 기자는 매일 두세 건의 전화를 받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형진씨. 그는 "음악인의 기본적 임무인 연주활동을 위해 지난 92년 KBS교향악단을 나왔다" 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교육이 너무 입시와 밀착돼 있어 레슨하는 사람으로서 부담이 크다" 고 솔직히 고백했다.

'교육' 이라는 허울을 쓴 계파예술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한탄이었다.

중견 클라리넷 주자인 김영갑 (43) 씨는 "강사 자리를 포기하고 2년간 죽을 각오로 홀로서기를 할 생각" 이라고 했다.

金씨처럼 '블랙홀' 을 거부하는 예술가가 많아질 때 우리의 공연예술은 청신한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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