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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부패국가 이미지의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관용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가령 한국 법조계의 구조적인 비리가 일본에서 일어났다고 치자.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 입법부와 행정부 최고책임자들의 자리가 결코 온전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갈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끼리 뇌물을 주고 받는 구조적 범죄란 일본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비리가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연례행사처럼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한국은 법조인의 비리에 매우 관용적인 사회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얼굴이 뜨거워진 한국인들이 일본을 공격할 자료는 성 (性) 의 문화에서나 찾는다.

지난 1년사이에 떠들썩했던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전 총리나 야마자키 다쿠 (山崎拓) 전 자민당 간사장.간 나오토 (菅直人) 현 민주당 대표의 여성 스캔들이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치자. 발각되기 전에는 여러가지 음모론이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부인하기 어려운 국면에까지 몰리면 정적 (政敵) 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여성단체나 유권자들이 요란해질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그들의 정치생명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일본 정계의 당사자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유권자들을 상대로 태연하게 연설도 하고 21세기를 논하기도 한다.

그들을 둘러싼 음모론은 며칠만에 사라져버린다.

일본 정치인들의 성추문은 이미 상례적인 것이 돼버렸다.

서로가 이해하기 어려운 두 나라 관용의 문화 가운데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한국쪽이다.

법조 엘리트들의 범죄가 끊이지 않는 한국의 부패를 하나의 문화로 소화시키기엔 너무 덩어리가 크다.

일본인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10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 도쿄 (東京)에서 대성황을 이룬 한국투자 설명회에서 일부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 관료들의 부패도 (度)가 얼마만큼 개선됐는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리스크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의 첫째 항목으로 안보문제를 꼽고 그 다음으로는 부패도를 올려놓는다.

중국에서도 관료들의 부패 때문에 혼이 났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뇌물행각에 지친 사람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회원이 된 한국에서 사건 수임을 둘러싼 법조인들의 비리가 횡행한다는 것은 입이 열개라도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에서 수백억엔대의 재산을 모은 동포가 있다.

그는 수년 전 한국의 산야에 모셨던 선친의 묘를 일본으로 이장해버렸다.

다른 동포들이 망향의 염을 이기지 못해 한국으로의 이장을 검토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행동이었다.

그는 서울에의 투자를 극력 말리는 편이 돼버렸다.

한국의 고향을 방문해도, 투자를 하려 해도 뜯기는 게 너무 많다는 게 그의 불만이었다.

그는 한 사람의 기업인이라기보다 우선 '자선사업가' 로서의 활동을 요구받는데 화가 치밀어 있다.

어디를 가나 가욋돈이 필요한 한국의 부패에 넌덜머리를 냈다.

1년 전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 (官) 의 부패 숙정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그러나 최근 법조계의 부패에 다시 어안이 벙벙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면서 "아직도…" 하는 반응이다.

극력 말을 아끼는 일본 기업인들의 표정에서 한국투자환경의 현실을 읽게 된다.

일본의 법조비리도 예외가 없는 건 아니나 변호사의 사기.횡령 등 개인을 둘러싼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사법부가 부패했다고 야단들이다.

판.검사까지 연결된 한국형 범죄가 일본에서 발생했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갖는 대사건이 될 것이라는 건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국은 늘 제도 탓을 많이 한다.

한국의 사법제도는 거의 일본을 모방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쪽은 청렴도가 유지되고 한국쪽은 부패도가 높다.

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운영이나 정신.의식면의 문제인가를 따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 각국의 투자유치 활동은 자국 또는 특정 도시의 매력을 어떻게 과시하느냐에 중심을 두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센터로서의 이점을 되살리고자 하는 싱가포르는 임금 인하정책 이외에 제도운영의 공정성과 행정의 청렴성을 팔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 (上海).다롄 (大連) 지방의 기업투자 우대조치와 함께 부패 추방운동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한국 당국자들은 역시 각종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국내에 거점을 두고 있는 30개국, 1백여개 지역의 투자유치 담당사무소간 경쟁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이 밖에서 아무리 투자 유치를 잘 해도 안에서 부패척결이 안되면 우리의 매력은 사라진다.

일본의 중소.중견기업인들은 바로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

최철주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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