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집값 장관’ 3인 심야 회동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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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24일 오후 9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이 자리를 함께했다. 부동산 시장 점검을 위해서였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장관들이 한밤중에 만나 머리를 맞대야 했던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26일 “부동산 가격 상승 추세가 심상치 않아 상황 진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공식 입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윤 장관은 약 2주 전인 10일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으로 정상화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라며 “현 단계에서 추가적인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열흘 뒤인 20일 정부는 부동산시장점검회의를 했다.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은 “현 시점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 강화 등 추가조치를 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이 주택시장의 가격 상승세엔 차츰 탄력이 붙었다. 8월 셋째 주(17~21일) 강남 3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0.52%를 기록했다. LTV 규제가 강화된 지난 7월 둘째 주(6~10일)의 0.66%에 근접한 수치다. 이런 오름세는 강북권과 수도권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잠했던 땅값마저 들썩이고 있다. 7월 전국 땅값 상승률은 0.21%로 올 들어 가장 높았다. 서울(0.28%)과 경기(0.3%) 등 수도권의 오름세가 빨라지고 있다.

장관들은 심야 회동에서 추가 대책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부처 간에도 일부 이견이 있었다. 금융위는 금융 규제책을 잇따라 내놓는 것에 대해 거북해했고, 국토부는 가격·거래에 대한 직접 규제 같은 예전 방식의 부활에 질색을 했다.

규제는 당장 수요를 내리누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공급이 달리는 상황에서 일어난 가격상승이라면 규제의 효과를 제대로 내기 어렵다. 정부가 규제 강화에 선뜻 나서기 어려워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정부는 최근 집값 불안의 근본 원인을 공급 부족으로 여기고 있다.

수도권 집값이 안정되려면 대개 매년 25만~30만 채가 공급돼야 하는데, 올해는 아무리 해도 수치를 채우기 힘들다. 사실 공급 부족은 시기를 놓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빨리 풀어 민간의 주택 공급을 독려했어야 했는데 때를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 법안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주택을 추가로 공급하는 데는 적어도 2년은 걸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집값 안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지금 비상한 공급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2년 후 국민에게 부담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급 확대에 필사적이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집 없는 서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인 주택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가을 정기국회에서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사력을 다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비해 수요를 억제하는 대출 규제 여부가 확정되기까지는 2~3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황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뭔가 대책을 내놔야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LTV와 DTI 강화를 포함한 보다 ‘큰 칼’을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상렬·김준현·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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