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대문호 괴테.
“귀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독일어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문학이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 때문만 아니라, 이제 독일어를 잘 이해하기만 하면 다른 말을 많이 알지 못해도 되기 때문이지요. 다만 프랑스어만은 배워야겠지요. 프랑스어는 사교 언어이고, 특히 여행 중에는 없어서는 안 되니까요. 누구나 알고 있어서 어디로 가든 통역 대신에 그 말로써 일을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의 경우 이들 나라의 최고 작품은 훌륭한 독일어 번역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그 말들을 배우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독일인의 본성 속에는 모든 외국의 것을 그 본래 모습대로 평가하면서 이질적인 특성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언어는 매우 유연합니다. 그 때문에 독일어 번역은 매우 충실하면서도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좋은 번역이 있으면 시야가 매우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라틴어를 몰랐기 때문에 프랑스어 번역으로 키케로를 읽었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원어로 읽는 것 못지않게 훌륭하게 읽었던 거지요.”
우리도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한다. 그런데 우리의 한글 자랑과 괴테의 독일어 자랑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한글의 ‘과학성’을 자랑하는데 괴테는 독일어의 ‘콘텐트’를 자랑한다. 과학성과 콘텐트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한글은 독일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보다 무려 2000년 뒤에 ‘창제’된 글자다. 최신형 컴퓨터가 우수하듯이, 최신형 문자가 과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걸 자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자는 무엇보다 지식을 전달하는 그릇이다. 아무리 우수한 ‘그릇’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음식물’이 함량 미달이라면 허망하다. 허기진 배로 그릇만 상찬해서 무엇 하겠는가. 우리가 한글보다 과학성에서 뒤떨어진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콘텐트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번역이 얼마든지 있어서 한글만 알아도 전 세계의 고급 지식을 얼마든지 섭렵할 수 있다고 자랑할 날이 우리에게는 언제 올까. 괴테는 이미 200년 전에 독일어가 그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