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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한국인 비판'쓴 이케하라 마모루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프로이트가 말한 카타르시스는 '배출의 미학' 이다.

꽉 막힌 공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분이 한꺼번에 분출될 때의 그 쾌감. 한국인들은 26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한 일본인이 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란 책을 통해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꼬집었기에 한국인들이 이토록 웅성대는가.

그는 왜 도발적인 표현까지 구사해가며 남의 나라를 비판하고 나서게 됐는가.

그의 말은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여야 할 '쓴 소리' 인가, 아니면 우월감에서 내뱉은 '독약' 인가.

이런 저런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화제의 주인공 이케하라 마모루 (池原衛.64) 를 만났다.

[만난사람=문화부 허의도 차장]

- 선생의 책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관가 (官街)에서도 김종필 (金鍾泌) 총리 지시로 공무원들이 책을 단체로 구입해 볼 정도로 열기가 대단한데 '맞아죽을 각오' 까지 하고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는 한국인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한국은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영원히 일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나라인데 한국이 엉망이 되면 옆에 있는 일본.중국까지도 피해를 보게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본과 한국의 후손들이 하나됨으로, 아니 아시아적 연대감을 높이는 방편으로 용기를 낸 것입니다. "

- 그래도 26년이란 세월을 한국에서 보낸 걸 보면 뭔가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었을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난 마늘과 고추를 싫어합니다. 김치도 매워서 잘 못먹어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외국에서 오래 살 수 없는 법인데 26년간이나 이렇게 한국에 살고 있는 걸 보면 진한 인연이 있나 보죠. "

- 죽기를 각오하고 한국 비판을 늘어놓았는데, 그 중에서 뭐가 가장 문제입니까.

"한마디로 한국은 무법 (無法) 국가예요. 늘 부정부패를 없애자고 말하지만 소용없는 건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수가 없어 법에 걸리고, 재수가 없어 뇌물먹다 잡혔다고 말하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며,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준법정신은 아프리카만도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재수가 없어' 어쩌구 하는 말이 없어져야 한국이 잘돼요.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사건만 해도 그렇지, 법을 다루는 사람들조차 법을 어기니 국민이 어떻게 법을 지키겠습니까. 결국 '떡값' 이란 게 문제예요. 일본에도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도 문제죠. 일본에선 떡값 받으면 '무조건' (감옥에)가는데 여기선 재수가 없으면 간다니 말이 됩니까. "

- 저서에 보면 일상생활, 특히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문제에 대해 심각한 어투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만.

"보십시오. 신성한 교회 앞에는 자동차가 뒤엉켜 엉망이고 제 몸 청결히 하러온 목욕탕에는 너무나 태연하게 남이 지나다니는 바닥에 코를 풀고 가래침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걸 보면 난 한국인들이 뭐 누고 뒤도 안닦는 사람같이 보여요. 죄송한 말이지만…. "

그대로 두면 그의 입에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다른 질문으로 옮아갈 수밖에 없었다. 26년간 쌓이고 쌓인 감정을 쏟아놓으려니 오죽하랴.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맞아죽어도…' 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니 이번 인터뷰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나 주변 이야기 쪽으로 중심을 맞추기로 했다.

- 책을 내고 나서 일약 유명인이 됐는데 달라진 게 많나요. 혹시 진짜로 때려죽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던가요.

"내가 이 책을 쓰기 전 한 월간지에 비슷한 내용을 기고할 때부터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신년초부터 최근까지 일본에 들어갔다 나와보니 화제가 됐더군요. 아직 칭찬하는 사람들만 있지 대드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한국이 나아지려면 '저런 쪽발이 새끼가…'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대항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물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

- 한국에선 주로 어떤 일을 해왔나요.

"한.일 경제협력을 위해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曾根康弘) 전총리 방한 이후 2차 경제협력 때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주로 환경문제 쪽에서 일을 합니다. 환경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후손들을 위해 환경과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

- 말이 나왔으니 한국인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말할 것도 없지요. 고위 공직자란 사람들이 그린벨트 안에 불법 건축물을 짓는 게 다반사니까요. 일반인들의 환경인식은 쓰레기문제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자기 동네에 소각장 들어서는 걸 반대하면 산더미같이 쌓이는 쓰레기는 어떡할 거예요. 지난번 군포 쓰레기 전쟁때 일부 주민들이 자동차에 쓰레기를 싣고 가 몰래 남의 동네에 버리는 일까지 있었잖아요. 일본에서도 신주쿠 (新宿) 나카노 (中野) 구민들이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다가 혼난 적이 있었어요. 다른 지역 주민들이 나카노구의 쓰레기를 막아버렸으니까. 그래도 몰래 내다버리는 일은 없었어요. "

- 한국은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를 들어왔는데 언제부터 엉망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 이렇게 좋은 나라가 있구나.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아직 유교사상이 국민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을 때였으니까. 일본이 경제발전에 정신팔려 잃어버렸던 미덕과 좋은 습관들이 한국에 많이 남아 있어 참 좋았어요. 나도 지금은 욕쟁이가 다 됐지만 처음 한국말을 배울 땐 존대말만 배웠어요. 욕은 다 먼저 온 일본인에게서 배웠죠. 내 생각엔 88올림픽 이후에 한국이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질서를 강요하다가 민주화다 뭐다 해서 한꺼번에 풀어버리니 개판이 된 거죠. "

- 올림픽 이후 뭐가 그리 엉망이 된 겁니까.

"올림픽 이후 한국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경제의 논리가 인간적인 삶에 앞서게 된 거죠. 모두들 정신없이 바빠졌어요. 한국인들이 부모상을 당했을 때 거의 실신할 정도로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바빠지고부터는 그런 미덕도 사라졌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던 여자들은 개성도 없이 한결같이 짙은 화장을 하게 됐잖아요. 요즘도 보세요. 아가씨들부터 50대 아주머니까지 섹시하다며 온통 입술을 검게 칠하고 다니는 통에 식당에 가면 입맛이 싹 가십니다. 세계의 유행은 한달이면 끝나는데 여기선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차를 타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적어졌고, 택시를 타는 데도 질서가 없어요. "

- 책에서는 한국인의 교육의식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던데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학력 중심의 사고방식이 문제예요. 입시때 수험생들을 위해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의 출근시간까지 늦추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습니까. 경제 성장기에 청소년기를 겪었던 30~40대 여자들이 제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다니니 나라 꼴이 잘될 리 있겠습니까. "

-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듣기에 '시쓰케' 라는 독특한 교육이 있다던데요.

"아이들의 의식은 대개 다섯살이 되기 전에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 전에 부모들, 특히 엄마가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자기가 치워라'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라' 는 등의 교육을 시키는 게 시쓰케예요. 일본인의 준법정신.질서의식은 바로 이 시쓰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도 요즘 부모들이 바쁘고, 금전 만능주의가 판을 쳐 옛날과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안타깝습니다. "

- 책에서 언급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일본에 1백년이나 뒤처져 있다니 솔직히 기분 나쁜데요.

"가만히 두면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의식이나 습관의 변화는 수십년에 걸쳐 일어나는데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교육부터 뜯어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 제대로 해도 1백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옛날 한국 속담에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자식 매 한대 더 때려라' 는 말이 있잖습니까. 좋은 한국 속담들만 제대로 실천하면 돼요. "

- 일본인과 장사하려면 너무 까다로워 골치 아프다는데 한국의 사업가들을 위해 훈수 하나 부탁합니다.

" '고객을 기쁘게 하는 방법' 을 연구하라는 겁니다. (인터뷰하던 식당에서 금속으로 된 물컵을 들어보이며) 여름이라면 이 컵에 담긴 물이 맛있겠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에 금속 컵에 물을 담으면 물 맛이 나겠습니까. 돈버는 생각만 하지말고 고객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면 한국 물건도 얼마든지 일본 시장에 들어올 수 있어요. "

- 장시간 감사합니다.

[이케하라씨는…]

▶1935년 일본 도쿄 출생 ▶58년 와세다대 제1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 졸업 ▶60년까지 스포츠전문지 야구담당 기자로 사회활동 시작 ▶61~65년 안도 가쿠 (한일회담 당시 한일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 중의원 보좌관 역임 ▶64년 이후 세차례 가나가와현 도의원 낙선 ▶72년 한국에 건너와 현재까지 한.일경협 관련 협력업무 종사 ▶현재 오사카 라센 관공업 (ORK) 고문으로 경기도 성남시 거주

[그래도 한국을 사랑하는 7가지 이유]

하나의 특성이 경우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비칠 수 있다.

책에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을 비판한 이케하라도 인터뷰에서는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고 고백했다.

그의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일곱가지 이유' 를 소개한다.

◇ 인정이 많다 = 한국인의 자식사랑이나 부모에 대한 효심은 일본인이 못따라가는 덕목중 하나다.

그 정신이 '가족' 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될 게 아니라 타인, 나아가 인류 전체로 범위를 넓혀간다면 한국인은 전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 머리가 좋다 = 머리가 좋다는 것만으로는 장점이 될 수 없다.

머리가 좋은 만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도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그 좋은 머리를 생산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국은 틀림없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이다.

◇ 대범하다 = 한국인은 일본인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량과 여유를 갖고 있다.

그런 대범함이 어떨 땐 어지간한 잘못에 눈감고 물의를 일으킨 대사건을 쉬 잊게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나라 전체가 어느 수준까지 오른 다음에는 그 대범함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열심히 공부한다 = 치맛바람을 비난했지만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개혁을 통해 이 교육열을 효과적으로 살려야 한다.

◇ 자존심이 세다 = 한국인의 민족적 자존심은 정말 대단하다.

일상에서는 '폼생폼사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겉치레가 심해 비난했지만 한국인의 큰 재산인 민족적 자존심을 잘 살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 믿음이 강하다 = 일본에 비해 종교적 뿌리가 깊다.

궁극적으로 올바른 삶을 가르치는 게 종교인 만큼 종교를 믿는 한국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바른 삶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게다.

◇ 뚝심이 있다 =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한국인 특유의 배짱과 뚝심 때문일 것이다.

정리 =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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