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각제 연기론']청와대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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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민련이 '연내 내각제 공론화' 의 기치를 들고 나서자 청와대가 참고 참았던 얘기를 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지금은 내각제를 얘기할 때가 아니란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경제에 매달릴 때라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내각제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 하기는 하되 그 시기를 조정하자는 것이다.

17일 연기론을 개진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국민 약속이므로 어겨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제로 미루자는 얘기는 없었다.

그 점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 (金鍾泌) 총리가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金대통령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 관계자의 발언에는 개인의 견해가 아닌 金대통령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도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의 자제를 당부한 바 있다.

원래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개헌 합의시한은 올해 말이다.

따라서 가장 주요한 대목인 개헌을 연기하자는 것은 시기를 포함한 약속 전반을 재조정하자는 게 된다.

그러나 내년 봄에는 16대 총선이 있다.

물리적으로 총선 직전에 개헌을 하기는 어렵다.

국회가 새로 구성되고서도 마찬가지다.

새로 구성된 국회가 바로 개헌을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임기문제 등 법리적 문제들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15대 국회 임기말인 올해 말로 개헌시점을 정했던 이유도 이런 것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작금의 개헌연기론은 잠시 개헌을 미루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상 한참 뒤로 미루자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이와 관련해 상당히 의미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16대 국회에서 개헌하는 것은 걱정할 게 없다.

이제 1년 지났다. 앞으로 4년 남았다. "

실제로 개헌을 하더라도 16대 의원의 임기문제 등을 해결할 길은 있다.

논란은 있겠지만 헌법부칙 등에 임기를 보장하면 된다.

결국 대통령 임기말로 늦추자는 얘기로 들린다.

내각제 개헌을 하되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4년 남았다" 는 말이 그것을 감지케 한다. 약속도 지키고 임기도 채우는 방안인 셈이다. 물론 역대 정권마다 임기말쯤이면 내각제 개헌에 매력을 느껴왔다.

그러나 임기말 권력누수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날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합당 얘기도 했다.

임기말을 염두에 둔듯하다.

다만 '현재로선' 그것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자민련의 전도가 양양해야한다" 는 말을 했다.

"모두의 전망이 밝을 때 정치가 된다" "물흐르듯 가면 된다" 는 말도 남겼다.

그것은 뒤집어보면 자민련측이 연기론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일 수 있다.

공동정부 내에서 보조를 맞추기 보다 한쪽이 부담스러워 하는 내각제 얘기만 자꾸 꺼내면 곤란하다는 지적으로 이해된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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