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싱가포르] 下. 대통령 장학생 그룹(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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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미래는 장학생 그룹이 이끈다'.

12일 총리에 취임할 리셴룽(李顯龍.52)부총리는 이틀 전에 '과도 내각(장관급 20명)'을 발표했다. 나단 대통령의 총리 지명을 받은 직후였다. 싱가포르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1991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직(형식상 국가 원수)을 두고 있다.

새 총리의 조각 발표는 간단했다. 눈에 띄는 새 장관은 단 2명. 외무장관에 조지 여가 발탁됐고 통산장관으로 림흥캉이 올랐다. 장관대리(부장관) 5명이 장관으로 승진했고, 나머지는 유임됐다.

총리에서 물러난 고촉통(吳作棟)은 선임 장관(국무 고문), 리콴유(李光耀)는 신설된 고문 장관(내각 고문)으로 내각에 남았다. 한 마디로 안정이 기조다. '깜짝 인사'는 없었다. 무슨 까닭일까.

싱가포르는 정부 차원에서 철저하게 엘리트를 키운다. 대표 주자는'대통령 장학생 그룹'. 싱가포르에서 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는 5만명선. 이들 동갑내기가 고교 시절부터 경쟁해 최우수 학생 5명이 대통령 장학생에 선발된다. 이들에겐 정부가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댄다. 해외 유학 뒤엔 정부 부처에서 사무관으로 출발해 2~3년 만에 국장급으로 승진한다. 공무원 생활 10년 정도면 차관보급에 오르고 그중에서 장.차관이 발탁된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다.

리셴룽은 대통령 장학생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와 절친한 테오 힌(49.준장) 국방장관과 이번에 외무장관으로 기용된 조지 여도 마찬가지다. 리셴룽의 부인이자 테마섹(국영기업 지주회사) 사장인 호칭(何晶.51)여사도 대통령 장학생 그룹의 멤버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창출하는 1000여개의 국영기업을 총괄한다. 그래서 호칭은 '싱가포르 경제의 여제(女帝)'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윤재천 KOTRA 싱가포르 무역관 부관장은 "장.차관급 인사 중 절반 이상이 대통령 장학생 출신"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와 별도로 모든 부처를 합쳐 해마다 10명 안팎의 '정부 장학생'을 뽑는다. 군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들은 군 장성까지 진급했다가 다시 정.관.재계로 자리를 옮긴다. 현재 차관급 이상 또는 국영기업 사장으로 재직 중인 예비역 장성이 30명에 육박한다.

싱가포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까지 배양한 차세대 엘리트가 26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6개월 단위로 능력.실적을 엄격하게 평가받는다. 부정부패의 덫에 걸리면 가차없이 쫓겨난다. 하지만 사람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에서 이들이 권력의 비선(秘線)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편 싱가포르의 관영 언론은 "신임 총리가 잘나가는 경제를 흔들지 않기 위해 안정 기조를 펴고 있다"고 보도했다. 60대 각료 중 일부가 은퇴하는 내년 6월께 본격적인 세대 교체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주역들 역시 대통령 장학생을 필두로 한 '정부 장학생'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싱가포르=이양수 특파원

***바로잡습니다.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게재된 '젊어진 싱가포르'라는 제하의 기획기사 세 편과 관련, 주한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세 가지 잘못을 알려와 바로잡습니다.

8월 10일자 15면에서 (리셴룽은)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한쪽에 접어두고 천수이볜 총통을 만나 중국 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접어둔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8월11일자 14면의 "싱가포르는 항구와 공항을 미군 기지로 제공하고" 부분은 싱가포르가 미국 공군과 해군에 통과 편의를 제공할 뿐이며 기지를 제공한 적이 없으므로 바로잡습니다.

8월 12일자 15면의 "테마섹은 싱가포르 국내총생산의 60%를 창출하는 1000여개의 국영기업을 총괄한다"는 부분에서 '60%'를 '13%'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싱가포르 대사관은 말했습니다. 60%는 11년 전에 실시된 한 조사에 근거한 것이며, 또 국영기업뿐 아니라 다른 공공 부문의 기여도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3%는 싱가포르 통계국에서 가장 최근인 2001년도에 조사한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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