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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에 묻는다]6.악은 선을 이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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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기억과 회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단순한 물리적 시간은 역사로 탈바꿈한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사라진 사람들, 스탈린 체제 하의 시베리아에서, 그리고 1980년의 광주나, 천안문 광장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20세기의 악행은 언제나 있어온 개인들의 반사회적 행태보다는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을 통해 자행되었다. 절대권력은 선과 악을 자의적으로 구별하고, 도덕의 담론을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사용해오면서 개인들의 일탈행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해왔다.

사회주의권에서 말하는 소위 '숙청' 이나 '문화혁명' 은 그 극단적인 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제도화한 폭력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전체주의의 망령은 퇴각 일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민주주의가 확산하고 일부 독재자들이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세계는 보다 행복해지거나, 도덕적 관점에서 성숙해졌는가?

사회주의 이후의 세계는 전쟁과 테러, 범죄 등과 같은 인간의 광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일까?

현대의 악은 단말마적인 비명에 가까운 악마주의 음악이 아니라, 권력과 소유에 대한 인간들의 광기 어린 집념에서 발견된다. 끝없는 욕망에 자신의 영혼을 저당잡히고서도 사람들은 '자유인' 이라는 환상 속에서 허상을 좇고 있다.

현대의 매체는 강렬한 자극과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반복되는 일상과 통속적인 규범의 세계를 벗어나 범죄와 성 (性) , 악마적 충동 등과 같은 소재들로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악이나 인간들의 어두운 충동들은 이제 빛의 세계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서 세기말적 체험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혁신적인 기술매체의 도움으로 감성의 지평이 확장되었으나 그렇다고 전달되는 내용 자체가 항상 삶의 진정성을 깨닫게 해주거나 인생 자체를 성공한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성사회의 다양한 문화상품들은 자아 중심적인 생활방식을 강화하는 기제로서 작용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또한 정보기술과 세계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이 축약되고, 삶의 거의 모든 조건들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사회의 기능적인 분화과정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이 같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이미 전통적 가치관이나 종교는 선악을 구별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준거로서의 역할을 상당 부분 포기한 지 오래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가 가족이나, 혈연공동체 등이 아니라 개인일 때, 도덕에 의한 사회적 통합의 방식 역시 변화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신분제 사회나 가부장 제도의 문제점들을 고려하면 전통의 해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신분' 이 아니라 '계약' 에 의해서 좌우되는 근대의 시민사회는 역사적 진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율과 계약, 이기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는 미래로부터의 도덕적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자기실현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근대적 주체성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고서는 인류의 생존이나 세계사회의 평화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 한계는 주로 생태학적 관점에서 제기되며, 자연에 대한 인류의 '약탈' 은 궁극적으로 미래 세대들의 복지를 무시하는 집단적 범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즉 이웃과 미래세대, 자연을 배려하는 타자성의 윤리에 의해서 자율성과 자유를 절대시하는 주체의 윤리가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자성의 윤리는 세계사회의 화두격인 인권의 담론에도 적용된다.

피부색과 문화, 전통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인격적 존재로 인정할 때 비로소 전쟁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범죄가 사라질 것이다.

인권이란 담론은 오늘날 주로 서구국가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서구국가들이야말로 지난 수백년간 미국과 중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수탈한 전과가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화의 다양성이 - 헌팅턴의 음울한 전망처럼 - 새로운 전쟁과 갈등의 원인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창조의 계기로 작용할 지의 여부는 상당부분 경제부문의 세계화가 어떻게 귀결될 지에 달려있다.

미래사회에서 악은 선을 구축할 것인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어두운 사건들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이 인류를 도덕적으로 성숙시킨 것은 아니다.

전쟁과 테러.범죄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야만성은 숙명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삶의 조건과 직결되어 있다. '카지노 자본주의' 가 상징하는 금세기 말의 혼돈은 보다 성숙한 문명을 낳기 위한 진통인가, 아니면 극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대결하는 분열과 반목의 문명으로 치달을 것인가?

악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소유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적정수준에서 통제되지 않는 한 크고 작은 악의 세력과의 싸움은 다음 세기에도 치열하게 계속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짧은 인생이 더욱 모험적인 까닭은 비록 그 결말이 불투명할 지라도 우리가 - 종종 자신들의 내부에서도 발견하는 - 이러저러한 악한 힘들과 시시각각 대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홍빈 고려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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