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벤처시대]1. 만화·애니메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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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벤처 (venture) 는 모험이다. 벤처비즈니스 (모험사업).벤처캐피탈 (모험자본) 같은 단어를 따라 젊은이들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화분야라고 벤처의 예외일 순 없다. 불황의 문화계를 감안하면 '안전운항' 이 기본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도전하는 정신을 토대로 문화는 새 길을 찾아간다. 새로운 문화수요의 창출을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모험적 문화공급자를 시리즈로 집중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시장을 창출하는 것. 상품이 무엇이든 장사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지상명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국내에 산업적 기반이 약하고 일반 인식도 높지 않은 만화.애니메이션은 상품 생산과 동시에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가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있다. '만화왕국' 이라는 일본은 순정.명랑.호러.SF.교양.생활.직장문화 등 만화잡지를 통한 만화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다양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96년 한해 4백40편의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출시한 OVA (비디오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오타쿠' 라 불리는 매니어층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 '매니어 시장' 은 우리 나라에서는 딜레마다.

사업을 벌이자니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자니 시장이 커질 전망은 요원한 것. 하지만 최근 일본 대중문화 개방 스케줄이 발표되면서 '파이를 키우자' 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략상으론 '다품종 소량생산' 인 일본의 예를 참고하고 있다. 만화무가지 '딱지' 를 발행했던 딱지문화는 지난해 11월 '누들누드' CD롬을 출시했다.

양영순의 원작만화 5권과 애니메이션이 담긴 이 CD롬은 1만8천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CD롬을 구동할 수 있는 PC환경을 갖춘 애니메이션 매니어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유통망이 없다. 일일이 뚫을만한 여력도 없다. 그래서 인터넷 통신판매라는 방법을 택했다. 어차피 이 제품은 볼 사람만 본다." 딱지문화 김혜옥씨의 설명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 구매력있는 매니어가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매니어를 겨냥한 양질의 상품을 끊임없이 내놓고 홍보하다 보면 저변이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지난해 12월16일 중앙일보 뉴미디어와 투니버스가 공동 주최한 '일본애니메이션 바로알기 영상포럼' 은 국내 매니어들의 숫자적 실체와 시장성을 예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4백석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앉거나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음성적.간헐적으로 유통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가 공개적으로 다뤄진 이 포럼은 현재 2회가 기획되고 있어 자체가 하나의 '상품' 이 될 가능성이 읽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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